'ㅁㄱㅅㅣㄸㄴ'.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현재 전시 중인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대기앤준(심대기·심효준)의 작품을 보고 한 관람객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남긴 관람평이다. ㄱ을 'ㅓ'처럼, ㄴ은 'ㅏ'처럼 써서 '머시따'(멋있다)를 낯설게 적었다. 심대기 디자이너는 "작품을 이해해야 가능한 코멘트 형식이어서 기쁘다"고 했다.

대기앤준의 작품명 또한 '한글 낯설게 보기'다. 인터넷에서 화면이 깨지면 한글의 특정 자모들이 비슷한 모양으로 보인다는 데 착안했다. 예컨대 '곽'이 깨지면 '팍'으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거꾸로, 처음부터 화면이 깨진 모양처럼 디자인하면 자모 하나를 여러 가지로 써도 어색함이 덜하지 않을까? ㄱ을 회전시켜 ㄴ을 만들거나, 위아래로 두 개 겹쳐 ㅋ으로 쓰고 이걸 ㅕ로도 활용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한글을 상상한 이 작품의 단초는 '야민정음'이었다. 대기앤준은 "훈민정음은 창제 이후 많은 변화를 거쳤고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도 변형되어 쓰이고 있다"며 "한글 자소 간 형태적 유사성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한글 '야민정음'이 생겨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 박영하가 2015년 타이포잔치에 출품했던 ‘야민정음’. 한글 일부 글자를 비슷한 모양의 한자로 표현해 웃음을 안겼다. 왼쪽부터 ‘엄마표 된장국’ ‘잘못했습니다’ ‘노상방뇨 금지’로 읽는다.

야민정음은 모양이 비슷한 글자를 의도적으로 바꿔 쓰는 한글 문자 유희다. '명작' 대신 '띵작', '귀엽다' 대신 '커엽다'라고 쓴다. '멍멍이'는 '댕댕이'인데, 댕댕이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반려견 축제에 5000여명이 다녀갈 만큼 이제 야민정음은 인터넷 하위문화를 넘어 언중(言衆)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엔 사회현상이 된 야민정음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야민정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대기앤준의 작품이 한글박물관은 물론 벨기에에서도 전시됐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통용되던 이름 '괄도네넴띤'(팔도비빔면)이 한정판 출시되자 "진짜로 나올 줄은 몰랐다"면서 반가워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영어로 한국어를 강의하는 미국인 유튜버 빌리도 야민정음을 다뤘다. 그는 "댕댕이, 커엽다, 롬곡('눈물'을 180도 회전시킨 형태) 세 단어는 기억해두면 한국어를 더 자연스럽게 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야민정음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왼쪽부터 야민정음을 강의하는 유튜버 빌리, 지난해 열린 애견 마라톤 ‘썸머 댕댕런’, 팔도의 비빔라면 ‘괄도네넴띤’.

야민정음의 발원지는 인터넷의 한 야구 게시판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야민정음(야구+훈민정음)이다. 연예인의 유행어 등과 달리 한글을 자소 단위로 해체·재조합한다는 특징이 있다. 만드는 방식도 계속 진화 중이다. 글자 형태의 유사성을 이용하는 방법(대머리→머머리)부터 글자의 병합(돌돔→ ), 90도 회전(비버→뜨또), 180도 회전(육군→곤뇽), 알파벳 활용(배→ldH), 한자 흉내 내기(김장훈→숲 훈) 같은 방법도 있다. 한글을 재구성하는 네티즌들의 전복적 상상력이 무릎을 치게 한다.

국어학계에서도 한글 파괴라는 일방적 관점에서만 야민정음을 바라보지 않는다. 서울대 국문과 박진호 교수는 야민정음이 본질적으로 수수께끼와 비슷하다고 본다.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만큼 원래 한글 표기와 비슷하지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완전히 다르지도 않은 야민정음이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과거의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비틀고 재조합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산물이 탄생한다"면서 "한글이라고 해서 변형·파괴되지 않고 영원히 보존되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조선대 국문과 강옥미 교수도 '야민정음과 급식체의 해체주의 표현 연구'(2018)에서 "야민정음과 급식체(10대들의 은어)의 모든 표현이 문법적이거나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의사소통의 윤활유 측면에서 본다면 수긍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