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절제된 검찰권? 李, 정권 수사 축소 예고한 것"
文 대학 동문 중 첫 검사장... 현 정권 수사 때마다 '신중론'
법무부에선 조국·선거개입 수사 지휘부 좌천 인사 주도
일각선 "그래도 성실했던 검산데... 무작정 덮지는 못할 것"
이성윤(58·사법연수원 23기) 검사장이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13일 부임했다. 이로써 이 검사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년 8개월 만에 검찰 내 핵심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옛 중수부장)을 모두 거치게 됐다. 법조계에선 그를 '문재인 정부 최대 수혜자'라고 부른다. 그는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학과 후배이면서,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특별감찰반장으로 근무했다.
이 지검장에게 쏠린 최대의 관심은 그가 서울중앙지검이 진행 중인 현 정권 비리 수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다.
예상대로 그는 취임사에서 ‘절제된 검찰권’을 강조했다. 이 지검장은 "수사 현장에서 국민의 요구와 바람이 무엇인지를 잘 경청해야 한다"면서 "수사의 단계별 과정 과정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절제와 자제를 거듭하는 검찰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한정된 수사 역량을 현안 수사는 물론 국민 민생과 직결된 사건에도 투입해 효율적인 수사 시스템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권 보호가 검찰의 존재 이유이자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라고도 했다.
검찰 안팎에선 서울중앙지검이 진행 중인 현 정권 비리 수사를 위축시키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현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과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사건, 조국 전 법무장관 가족 비리 사건 등을 수사 중이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제 청와대가 거부하는 압수 수색 같은 건 시도도 안하겠다는 의미로 들렸다"라면서 "재배당, 보직 변경 등으로 수사팀을 찢어 놓겠다고 선전 포고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지검장은 2012년 서울동부지검 형사2부장 시절 부하 검사의 성추문이 불거져 검사 이력에 큰 타격을 입었었다. 당시 전모 검사는 여성 피의자와 검사실에서 유사 성행위를 하거나 외부에서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 일로 당시 석동현 동부지검장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이후 이 지검장은 서울고검과 지방 지청, 금융위원회 파견 등 한직을 전전했으나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윤석열 총장만큼이나 파격적 인사였다.
이듬해 곧바로 대검 반부패부장 자리에 앉아 송인배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김은경 전 장관 등이 연루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 등을 지휘했다. 검찰 내부에선 그가 현 정권을 겨눈 수사 때마다 '신중론'을 폈다는 말이 나왔다.
송 전 비서관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동부지검은 당초 2018년 말까지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으나 대검이 끼어들어 지연지켰다는 의혹도 있었다. 한 수사팀 관계자는 "대검 반부패부에서 관련자 영장 청구 적절성을 검토한다며 수사기록 일체를 모두 갖고가서 한달 넘게 수사를 지연시킨 적도 있다"면서 "당시 이 검사장이 정권 관련 사건은 직접 다 살펴본다는 말들이 많았다"고 했다. 당시 송 전 비서관은 상습적으로 불법 정치자금 2억 8000만원을 받고도 불구속 기소에 그쳤다. 그는 1·2심에서 모두 유죄를 받았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때도 그랬다. 김은경 전 장관과 청와대가 환경부 산하기관에 전(前) 정권 인사들을 강제로 내보내고 현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을 앉히도록 한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직권남용·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지난해 4월 기소됐는데, 당시 수사팀도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두고 대검과 상당한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검 측과 수차례 서면·대면 회의를 하는 의사결정 과정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밝히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지검장은 지난해 조국 전 법무장관 수사에서 윤 총장을 배제시키려고 했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그가 조 전 장관 취임 당일 강남일 대검 차장검사에게 "검찰총장을 배제한 조국 수사팀을 꾸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현재 시민단체로부터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성상헌)가 수사 중이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강 차장에게는 지난 8일 좌천 인사가 나기 전날 "평화와 휴식이 있는 복된 시간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조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지검장은 지난 8일 인사 참사라고 평가받는 검찰 고위 간부 인사 과정에서도 검찰총장의 의견 청취 절차를 생략하는데 앞장 섰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인사 발표 8시간여 앞두고 열린 검찰인사위원회에서 일부 위원이 "고위 간부 인사에 대한 검찰 의견을 먼저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가 나서 "나중에 들어도 된다"며 회의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한 전직 검사장은 "현 정권에서 중용된 이 검사장이 검찰총장과는 ‘다른 길로 가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수사팀은 인사 참사가 난 이튿날부터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실 등을 연이어 압수 수색했다. 일각에서는 "이 지검장이 부임하기 전에 최대한 할 수 있는 수사를 진행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 검사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다만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 검사장도 반부패수사로 주요 이력을 쌓아온 합리적이고 직분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동안 법무부에서 나름의 요구와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면, 현재 주요 사건 수사도 무작정 덮거나 하는 무리수를 두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