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9일 미국이 요청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해 "청해부대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라비아반도 서남부 아덴만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를 아라비아반도 중동부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동 배치하는 식으로 파병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고위 당국자는 이날 비공개 기자 간담회에서 '파병 가능성과 방식'에 관한 질문에 "청해부대 활동 (목적) 안에 '우리 국민의 안전 보호'도 들어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청해부대 활용' 방안을 콕 집어 언급한 것은 작년 7월 미국이 우리 측에 호르무즈 파병을 요청한 지 약 6개월 만에 처음이다.

다만 파병하더라도 미국 요청에 응하는 모양새보다는 우리의 독자 결정임을 강조하는 식이 될 전망이다. 이는 일본의 파병 방식과 비슷한 것으로, 이란의 반발을 감안한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0일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미 측이) 파병 문제에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면서도 "현 중동 상황에 대한 미 측의 상세한 브리핑이 있었다"고 했다. 미국이 우회적으로 재차 파병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청해부대 활용 카드를 수용할지를 묻자 "꼭 싫어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본도 (미국의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에 동참하는 식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파병하는 형식"이라고 했다. 일본이 동맹인 미국뿐 아니라 외교 관계가 있는 이란의 처지도 감안해 독자 파병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어 "우리도 국민을 이라크에 1600명, 이란에 290명 두고 있다"며 "정부 결정이 영향을 줄 수 있어 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란을 적성국으로 상대해온 미국과 그렇지 않은 한국 처지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은 10일 해상자위대 호위함 '다카나미'와 P-3C초계기를 중동 해역에 파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위대의 중동 파병을 결정한 최근 각의(閣議·국무회의 격) 결과에 따른 것이다. 초계기는 11일 일본을 출발하고 호위함은 다음 달 초 출항할 예정이다. 파병 규모는 약 260명으로 활동 해역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다소 떨어진 오만 인근 해역, 아라비아해 북부로 한정됐다. P-3C초계기는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에서 해적에 대응하는 활동도 한다.

군 관계자는 "한때 특전사 파병이나 링스 헬기 추가 투입 등 여러 방안을 논의했지만 모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며 "청해부대 작전 지역 변경을 유력한 안(案)으로 잠정 확정한 뒤로 추가 논의는 없었다"고 했다. 최근 중동 지역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정부 일각에서 파병 회의론도 제기됐지만 청해부대 파병안 외의 새로운 군사적 조치는 고려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파병 대신 경제적 기여 등 '제3 카드'도 거론했으나, 이는 미국과 한 파병 약속을 사실상 깨는 것이라 대안에서 최종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