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수들의 꿈은 '대형 기획사' 입성이었다. 들어가기만 하면 성공으로 가는 길이 쉽고 탄탄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수들의 대형 기획사 '엑소더스(Exodus·대탈출)'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작년 11월 걸그룹 '투애니원'의 멤버였던 씨엘(CL)이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난 데 이어 한 달 뒤 이하이도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YG를 대표해온 두 여성 보컬이 나간 것이다. JYP도 마찬가지다. 작년 8월 박지민에 이어, 9월 백아연, 12월 백예린까지 줄줄이 떠났다. 이들은 이하이와 함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K팝 스타' 출신이기도 하다. SM에서도 걸그룹 '에프엑스' 소속이었던 루나와 엠버, 슈퍼주니어M 소속인 헨리도 떠났다.

3대 기획사뿐 아니다. 지난 6일 아이유는 카카오가 모그룹인 소속사 카카오엠과 결별하고 12년 지기 매니저가 설립한 신생 회사 '이담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이에 카카오엠은 '이담 엔터테인먼트' 지분 투자 참여를 밝히기도 했다. 블락비의 멤버인 '지코'는 KQ엔터테인먼트와, 크러쉬는 아메바컬쳐와 결별했다. 왜 이들은 떠나는 것일까?

◇'백'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

대형 기획사의 가장 큰 힘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섭외력이다. 신인 가수는 대형 기획사가 아니면 방송 3사 음악 무대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음악 프로→라디오→예능'으로 이어지는 성공 공식은 대형 기획사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최근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이 힘을 잃고, 유튜브 등 1인 미디어가 떠오르면서 대형 기획사의 섭외 파워가 함께 유명무실해졌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도 유튜브 스타들이 역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형 기획사를 떠나 독자 행보를 걷는 가수들이 늘고 있다. ①지코 ②헨리 ③이하이 ④강다니엘 ⑤성시경 ⑥씨엘 ⑦아이유.

군소 기획사였던 빅히트의 '방탄소년단'이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적 인기를 이끌어 낸 것도 '백 없이 세계적인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롤 모델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수가 작사·작곡을 할 능력까지 있다면 고가(高價)의 작사·작곡가가 필요 없기 때문에 탈출이 더욱 자유롭다"고 했다.

◇맘 편한 나만의 기획사

떠난 이들이 정착하는 곳은 대부분 1인 혹은 군소 기획사다. 이들의 장점은 정산이 용이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 대형 기획사는 소속 가수들의 콘셉트에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JYP를 떠나 1인 기획사 '블루바이닐'을 설립한 후 영문 가사곡 '스퀘어(square)'로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르며 홀로 서기에 성공한 백예린이 대표적이다. 영문 가사곡을 타이틀곡으로 발표한다는 건 메이저 기획사라면 하기 어려운 결정. 블루바이닐은 "국내 가요 중 영문 가사곡이 실시간 차트 1위를 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성시경은 11년간 함께했던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와 결별하고 2018년 1인 기획사 '에스케이재원'을 설립해 소속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강다니엘도 작년 6월 1인 기획사 '커넥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소속사를 바꿨다.

◇대형 기획사 리스크

YG 사태처럼 대형 기획사의 '리스크'도 존재한다. 사건 사고에 휘말려 활동 시기를 놓치거나, '너도 함께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것이다. 소속 가수가 많아 인적·물질적 지원에서 다른 가수에게 밀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I.O.I)' 멤버 중 청하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도 군소 기획사 소속이라 지원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대화 음악평론가는 "회사와 일하게 되면 앨범 내는 시기부터 원치 않는 활동까지 자유를 제약받는 경우가 많은데 1인 기획사는 그런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다"며 "유튜브 영향력이 커지고 음원 시장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회사의 역할이 축소돼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