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작년처럼 세계경제에 'if가 많은'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작년 한 해 세계경제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미·중 무역 갈등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불확실성 등 큼직한 악재들이 글로벌 경기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지난해가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올해는 세계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4%로 예상했는데, 이는 작년 성장률(3%)과 비교해 0.4%포인트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올해 경제를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본지는 올해 세계경제 전망을 주제로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스티븐 로치 미 예일대 교수, 제프리 프랭켈 미 하버드대 교수 그리고 안토니오 파타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등 석학 네 명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석학들은 "올해 역시 예측 불허의 정치·경제 변수가 많은 'iffy(if가 많은, 불확실한)한' 해가 될 것"이라며 "경제 회복을 예단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하 같은 정책 수단을 상당 부분 사용해버린 상태라, 올해 경제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대응 수단이 부족해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요국 성장 동력 꺼지고 있다"
석학들은 최근 미·중이 관세 전쟁 '휴전'에 들어가고, 브렉시트 경로의 불확실성이 걷히는 등 단기적으로 경제에 희소식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주요국 경제 지표에서 경기 둔화세가 멈추는 듯한 신호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주요국 성장 동력 하락, 미·중 갈등 재점화 가능성, 각국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 여파 등으로 인해 경기 침체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석학들은 진단했다.
스티븐 로치 교수는 "유럽에서도 특히 독일 그리고 일본의 성장 모멘텀이 하향세를 보이고 있고, 글로벌 무역 부진으로 인해 동아시아 등의 수출 주도형 국가들에서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성장 동력이 약화되는 상황을 지적했다. IMF에 따르면 작년 독일과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0.5%, 0.9%로 저조했다.
로치 교수는 "문제는 이미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상당 폭 인하하거나 '제로(0) 금리'에 가깝게 운영하고 있어 불황에 대응할 정책 무기 대부분을 써버렸다는 점"이라면서 "올해 경제에 또 다른 충격이 발생할 경우 불황을 막을 방안이 많지 않다"고 경고했다. 작년에는 각국이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가까스로 지탱했지만, 올해에는 경기가 타격을 입을 경우 각국이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파타스 교수도 "중국 성장률이 올해 6%를 밑돌 것으로 전망되는 등 예전 같은 고속 성장을 상상하기 어려워졌고, 미국 역시 고용 증가가 둔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올해 세계경제가 성장할 여지는 제한돼 있는 반면, 정치적·경제적 사건으로 인해 경기가 후퇴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여럿"이라고 우려했다.
◇"미·중 갈등, 미 대선 변수"
석학들은 미 대선과 미·중 무역 갈등 같은 외부 불확실성도 올해 경제를 낙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사회 불안이라든지 지정학적 위기, 기후 문제 등도 경제에 예상치 못한 충격을 줄 수 있으나, 미국 대선과 주요 강대국 간 갈등 위험성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올해 기업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프리 프랭켈 교수는 "11월 미 대선이 세계경제에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될 것 같다"며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무역 환경이 나빠질 것이며,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비롯해 다른 많은 지역에서 지정학적 문제가 악화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작년 글로벌 경제의 '태풍의 눈'이었던 미·중 무역 전쟁은 새해에도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로치 교수는 "지난달 체결된 미·중 1단계 무역 합의는 미·중 관세 전쟁에 있어서는 중요한 휴전이지만, 양국의 분쟁에는 관세 외에도 더 많은 쟁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의 기업 보조금 지급,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강제 기술 이전 요구, 사이버 보안 문제 등 핵심 쟁점은 1단계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이 어려운 문제들이 올해 해결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고 밝혔다. 파타스 교수도 "무역에 관한 미국 행정부의 변덕스러운 정책은 경제에 큰 위험 요소"라면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이슈와 대선과 결합하며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브렉시트도 글로벌 경제에 우려 사항으로 꼽혔다. 영국은 올해 말을 브렉시트 전환 기간으로 못 박고, 이때까지 EU와 협상이 되지 않을 경우 노딜(합의 없는) 브렉시트를 단행한다는 입장이다. 석학들은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유럽 경제에 파괴적 효과를 미칠 수 있다"며 "그런데도 유럽 중앙은행들이 취할 수 있는 완화적 통화정책의 운신 폭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