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 코너에 등장했던 인물은 50명쯤 된다. 김기현 전 울산 시장을 만난 날은 3월 하순이다. 작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찰이 벌였던 김 전 시장 관련 수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울산지검의 ‘불기소 결정문’이 나온 뒤였다.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경찰 수사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문제가 매우 많았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지났고 결과를 되돌릴 수 없었다. 이런 기분이 작용해 대다수 언론은 단발성 사건으로 보도했다. 자유한국당도 의례적인 논평 발표로 그쳤다. 민주주의 제도는 선거의 공정함으로 유지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1단짜리로 넘어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때 김 전 시장을 만났다.

8개월 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가장 뜨거운 뉴스가 됐다. 몇몇 막후 정권 실세가 주요 국정을 농단하고 공작을 지시하는 장면의 일부가 드러났다. 이 때문에 장기표씨와 인터뷰(지난 6월)에서 나왔던 "박근혜에겐 최순실이 한 명, 문재인에겐 최순실이 열 명"이라는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영원한 재야' 장기표씨

노동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장기표씨는 문 정권의 속성을 이렇게 짚었다.

"그쪽 동네에선 운동 경력에서 밀리면 꼼짝 못하는 법이다. 문재인의 학생 시위 전력은 운동권 프로와는 비교 안 된다. 그에게는 이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 운동권의 포로가 된다. 이들에게 반대하면 제대로 운동도 안 해본 사람으로 볼까 봐 겁을 낸다. 민주노총에 절절매는 것은 단순히 촛불 집회 때의 부채 의식 때문은 아니다. '운동권 사쿠라'는 원래 노동자들에게 아부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다음과 같은 말에서 드러나는 그의 인격과 깨달음은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줬다.

"사실 나는 데모할 수 있는 대학생이어서 특혜를 받았다. 나 같은 사람만 있었으면 대한민국은 벌써 망했다. 농사 안 짓고, 공장에서 일 안 하고, 기업도 안 하고 전부 다 데모만 했으면 나라 안 망했겠나. 당시 나를 취조한 수사관에 대해서도 '인간 말종' '독재자 후예'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사회는 다양한 부문에서 다양한 노력이 총화를 이뤄 발전한다."

김병익 前 문학과지성사 대표

박정희 정권에 찍혀 동아일보에서 해직됐던 김병익 전 문학과지성사 대표도 성숙한 지식인의 사유(思惟)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그에게 "박정희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했는가"라고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독재자가 장기 집권을 하려면 가난하고 무식하게 만드는 빈민 정책을 써야 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을 이뤄 중산층이 형성됐다. 자신의 일시 권력을 위해서는 배반당할 선택을 한 것이다. 그의 서거 소식을 들은 날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가 중산층을 형성해 이들이 민주주의 주체가 되면 박정희는 재평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역사적 인물 평가의 단편성에 대해 참을 수 없다고 했다. 하나의 기준으로 한 인물의 전체 생애(生涯)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는 경우를 자주 보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권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성급하게 '정의'나 '적폐 청산'의 명분으로 과거를 정죄(定罪)한다. 관용이나 사랑이 빠진 정의는 위험하다. 어떨 때는 우리 사회가 오직 남의 약점을 들춰내는 '혐오 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탈원전'의 재앙

올해는 '탈원전'과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발전소 건설을 담당했던 김성원 전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거의 매일 다섯 명꼴로 직원 사표를 받아야 했던 내가 죄인(罪人) 같았다"며 탈원전 정책이 현장에서 어떤 재앙을 불러오고 있는지를 증언했다. 협력업체 직원들과 부양가족을 계산하면 2만4000가구의 생존이 위태해졌다. 국가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붕괴, 원전 수출 부진 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낳았다.

며칠 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 1호기'의 영구 정지를 결정했다. 월성 1호기는 7000억원 들여 핵심 부품과 설비를 다 교체한 뒤 10년 연장 심사를 통과한 원전이었다. 하지만 취임 초 문 대통령이 "설계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를 가동해온 것은 선박 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한 연설로 폐쇄 운명이 정해졌던 것이다. 미국은 설계 수명 40년인 원전을 60년으로 연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80년까지 늘리는 추세다.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대통령의 한마디에 7000억원이 날아가버렸다.

'한국형 원전' 개발자 이병령 박사

'한국형 원전' 개발자인 이병령 박사는 "문 대통령이 국민 안전을 위해 탈원전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궤변"이라고 말했다. 가압수(加壓水)형인 한국형 원전에서는 수소 폭발로 격납 용기가 뚫리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같은 방사선 누출 사고가 발생할 수 없고, 이는 연구 이론으로 이미 입증된 것이라고 했다.

"고리 1호기 원전을 가동한 1978년부터 지금까지 원전에 의한 사망자가 한 명이라도 나왔으면 난리 났을 것이다. 같은 기간 자동차 사고 사망자는 30만여 명이었다. 원전 비율이 줄고 석탄 소비가 늘자 2017년 한 해 석탄을 캐거나 채석 작업 중에 죽은 사람은 417명이었다. 석탄에 의한 환경 파괴를 제외하고 순전히 사고사로 그렇다. 탈원전은 국정 철학이 아니라 똥고집처럼 보인다."

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은 "현 정권은 전문가 얘기를 듣지 않는다. 과거로부터 축적된 지식과 경험조차 '청산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바보가 박사인 양 기술자를 통제할 때…'라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구절이 생각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명자 과총회장도 "자신의 잘못된 정책 판단을 고백할 줄 아는 지도자가 정말 용기 있는 지도자다. 지지 세력이 이탈할까 봐 그대로 고집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4대강 보 해체 논란

과학적 마인드와 실용적 사고 대신 시대착오적 이념 유령(幽靈)이 현 정권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 같다. 지난 3월 정부는 '4대강 보(洑) 해체'를 들고나와 시끄럽게 했다. 심명필 전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은 "멀쩡한 보를 돈 들여 해체하자는 게 말이 되나. 보수 정권의 시설물이라 보기 싫다는 것, 정치적 논리로 '적폐'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의 시작과 끝, 3년 9개월간 현장을 총지휘했던 그로서는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해체 대상인 '죽산보'가 있는 전남 나주 영산포에서 김창원 영산강뱃길연구소장을 만났다. 그는 생업으로 홍어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다.

"4대강 사업을 한 뒤로 영산포 수질은 5급수에서 3급수로 좋아졌다. 환경단체 사람들은 강 본류에 모래톱이 드러나는 것을 이상적인 전원 풍경으로 생각하는데 정말 무식한 소리다. 지류·지천에는 모래톱이 생겨도 되지만 본류에는 늘 수량이 풍부해야 한다. 보를 없애 물이 쫙 빠져버려 옛날의 썩은 강으로 돌아가는 게 무슨 자연성 회복인가."

4대강 보를 '적폐 청산'하듯 쓸어버리려 했던 정권의 목표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 원리주의와 반일 감정

올해는 한·일 관계도 거의 파국 직전까지 가본 한 해였다. 우리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있은 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는 더 겸허해야 한다. 우리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라"는 식으로 훈계조 발언을 했고, 이에 맞서 일본은 소재·부품의 수출 규제 조치로 나왔다.

당시 청와대와 여권을 중심으로 "죽창가" "의병 봉기" 등 반일 감정을 선동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그 대열에 서지 않으면 '매국노'로 공격했다. 우리 사회는 뭔가에 홀려 구한말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우리는 일본 우익의 혐한(嫌韓) 발언에 분노하지만, 우리의 반일 발언이 일본인에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에는 둔감했다.

한·일협정사를 연구해온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국내 시각으로만 자신의 판결이 정의라고 하는데 국경을 넘어 통용될 수는 없다. 일본 국민이 왜 일본 최고 법원이 아닌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하나. 현실적인 방책을 마련하는 게 외교인데 우리는 원리주의에 지배된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매국·굴욕 외교였으며 보상금을 너무 적게 받아냈다는 인식은 역사적 상황에 대한 몰이해다. 일본과 끈질긴 사투를 벌여 '무상 3억달러와 유상 2억달러'를 받아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종잣돈이 됐다. 경제 발전의 가치를 우선시했기에 우리 정부가 피해자 구제에는 확실히 소홀했다."

그의 인터뷰는 한·일 협정 내용과 징용 배상 판결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게 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여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한·일 갈등이 총선에 유리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청와대는 갈 데까지 가보자며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 종료'를 밀어붙였다. 종료 마감날에 결국 미국의 압력으로 되돌아왔다.

최성해 동양대 총장

올해 또 잊을 수 없는 인물은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다. 그를 만난 것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다음 날이었다. 조국 자녀의 표창장 위조나 입시 전형 의혹에 관련된 다른 대학총장들이 모두 침묵했을 때 그는 용기 있게 입을 열었다.

그를 만났을 때 "당신은 살아 있는 권력에 혼자 맞선 격이다. 아마 합법의 탈을 쓰고 대학과 총장 주변을 뒤지는 보복이 뒤따를 것이다"라고 말했고, 이 예측은 맞았다. 결국 그는 이사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교육부에서 그렇게 나가라고 하는데 가야지"라는 말을 남겼다.

언론에 몸담은 사람에게도 올해는 유독 힘들었다. 이렇게 바닥까지 갔으니 내년에는 좋아지는 일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자기 위안을 해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