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이 민주당과 여권 군소 정당이 최근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대해 "중대한 독소 조항"이라며 강한 어조로 반대 입장문을 낸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뜻이었다. 윤 총장은 애초 공수처 설치에 대해 반대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민주당과 군소 정당이 공수처법에 '검경이 인지한 고위 공직자 범죄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한 사실을 25일 오전 대검 간부로부터 보고받고 격앙했다고 한다. 검찰 간부들도 이 조항이 추가된 사실을 지난 24일 저녁에야 알고 하루 뒤 윤 총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윤 총장이 입장문을 내도록 지시했고, 입장문은 이날 저녁 7시 49분에 나왔다. 입장문에 '수사 검열' '독소 조항' 등의 강경한 표현이 들어간 것은 이 같은 윤 총장과 대검의 강한 불만의 기류가 반영된 것이다.
대검이 문제 삼는 것은 공수처법 전체가 아니고 새로 추가된 이 법 24조의 2다. 공수처 이외의 수사기관이 고위 공직자 범죄를 인지(認知)한 경우 이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하고, 공수처가 수사 개시 여부를 회신하도록 한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수사가 본격화되는 압수 수색이 이뤄지기 전부터 공수처에 수사 내용을 알려야 한다. 이를 통보받은 공수처가 '우리가 수사를 개시하겠다'고 회신하면 검찰은 더 이상 해당 사건을 수사할 수 없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해서는 검찰이나 경찰보다 우선적 수사권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비리'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중단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도 수사 착수 때부터 공수처에 알려야 하고, 공수처장이 요구하면 사건을 공수처에 넘겨야 한다. 현재 공수처법상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공수처장 한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권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검이 입장문에서 "검경이 사전 보고하면 공수처가 입맛에 맞는 사건을 과잉 수사하거나 사건을 가로채 '뭉개기 부실 수사'를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을 우려한 것이다.
검찰이 이렇게 반발하는 데는 공수처법 추가 조항에 현재 검찰이 진행 중인 수사에 대한 여권의 견제 의도가 담겼다고 보는 측면도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최근 검찰이 수사하는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특검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해당 공수처 조항을 통해 정권에 맞서는 수사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정권 차원에서 통제하고 간섭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가 무르익으면 여론 때문에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만큼 초기단계부터 관여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검찰이 공수처 하부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건 인지 단계부터 공수처에 보고하고 수사 개시 여부도 공수처 처분에 따라야 하는 것을 검찰로선 치욕으로 느낄 수 있다. 대검이 입장문에서 "공수처가 검경의 상급기관이 아닌데도 수사 착수 단계부터 그 내용을 통보받는 것은 정부조직체계 원리에 반(反)한다"고 한 것도 그런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검찰은 절차적인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공수처법 수정안은 이른바 '4+1 검찰개혁 협의체'인 민주당 박주민, 바른미래당 채이배, 정의당 여영국,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안신당 천정배 의원이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정안은 한국당 법제사법위원들조차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지난 24일 국회 의사국에 은밀히 접수됐다고 한다. 대검이 입장문에서 "수정안으로 수정의 한계를 넘었다"고 한 부분은 이를 지적한 것이다. 대검은 "통상의 법안 개정 절차와 비교해보더라도 절차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야당도 반발하고 있다. 한국당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밀실 야합 세력이 국민 몰래 청와대 비리는 덮고, 대통령 정적(政敵)은 손쉽게 제거하는 괴물 공수처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공수처법을 둘러싼 여야 간 충돌에 검찰까지 가세하면서 법안 국회 통과 과정에서 큰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