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파울루대의 한국어문학과 졸업생 8명이 번역팀을 결성했습니다. 매주 일요일 친구 집에 모여 '흥부와 놀부' 같은 전래동화를 번역하고 있어요. 이번엔 박민규의 소설 '카스테라'에도 도전할 겁니다."(임윤정 브라질 상파울루대 교수)
지난 4월 미국 UC버클리에는 전 세계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20여명이 모였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부터 이탈리아·베트남·인도·호주까지.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모든 대륙에서 한국어문학을 가르치는 이들이 모인 셈이다.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사람은 UC버클리 초청으로 6년째 한국 문학을 가르치는 권영민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였다. 그는 "외로운 곳에서 고생스럽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분들을 돌아봐야 한다"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문학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콘퍼런스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모인 이들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나눴다. 콘퍼런스 첫날, 브루스 풀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라는 제목의 논문을 들고 와 "소녀시대의 데뷔 앨범 제목이죠!"라며 경쾌하게 발표를 시작했다. 풀턴 교수는 200여편에 달하는 한국 소설을 번역·출간한 한국 문학 번역의 대가다. 그는 "최근엔 윤태호의 웹툰'이끼'를 번역했다"면서 "한국 문학의 범주가 웹툰, 그래픽 노블, 트위터용 짧은 소설까지 확장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고 했다.
호주에서 온 루스 바라클로 교수는 1989년 한국에 왔다가 10대 여공들을 만난 뒤 한국 문학 속 여공들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호주에선 K팝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심사가 있다"면서 "북한 문제나 한국 불교에 관심 있는 학생도 있고, 홍대에서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체험하고 연구 논문을 쓴 학생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최근엔 호주에 이민 온 20대 여성이 주인공인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재밌게 읽었어요. 호주에서도 꼭 번역됐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며 기뻐했다.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의 라비케시 교수는 한국어 E-러닝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그는 "인터넷으로 한국어 코스를 마치면 자격증을 발급하는 시스템"이라면서 "배우려는 수요에 비해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온라인 시스템을 개발하려 한다"고 했다. 응우옌 티 히엔 베트남 국립대 교수도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 기업 중 한국 기업이 제일 많다 보니 한국어를 배워서 취업하는 학생이 많다"면서 "2015년 이후로 매년 베트남어로 번역되는 한국 소설이 2~3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하노이·호찌민 9개 중·고교가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다.
가까운 나라인 중국과 일본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림걸 산둥대 교수는 "곧 중국의 한국어과가 한국에 있는 한국어과보다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라고 해 모두 웃음이 터졌다. 1992년 처음 중국과 수교했을 때,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6개에 불과했지만 30년도 안 돼 243개 대학, 학생 2만여 명으로 늘었다. 일본 와세다대 홋테이 도시히로 교수는 일본에서의 '82년생 김지영' 돌풍을 두고 "그동안 일본에서의 한국문학 위상과 비교하면 이건 하늘에서 우박이 내려오고 벼락이 몰려온 것 같은 대사건"이라면서 "한국 문학 시리즈를 출간하는 출판사가 나오는 등 역사상 처음으로 이웃 나라의 동시대 문학을 실시간으로 접하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