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작년 6·13 지방선거 전에 '김기현 울산시장 비위 첩보' 문건을 경찰에 내려보내 김 전 시장을 수사하게 했다는 '하명(下命) 수사'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작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경찰청장과 경남경찰청장이 조기 교체된 사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청장이 갑자기 바뀐 뒤 이 지역에선 모두 야당 후보에 대한 경찰 수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6·13 지방선거를 반년 앞둔 2017년 12월 경남경찰청장이 바뀌었다. 지방경찰청장 임기는 1년. 하지만 부임 5개월밖에 안 된 원경환 청장이 물러나고 이용표 신임청장이 부임했다. 석 달 뒤, 경남경찰청이 자유한국당 소속 나동연 당시 양산시장의 시장실과 비서실, 행정계 3곳을 압수 수색했다. 혐의는 '업무추진비 유용'. "나 시장이 신용카드를 허위로 긁어 현금화하는 '카드깡 수법'으로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의혹이 있다"고 더불어민주당 울산시장 선거 예비 후보가 고발하자 곧바로 수사에 나선 것이다.

지역 언론에는 '나동연 카드깡' 등 제목을 단 기사가 쏟아졌다. 민주당 후보는 TV 토론에서 이를 집중 공격했고, 결국 선거에서 이겼다. 그 민주당 후보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 경남선거대책본부 조직특보였던 김일권 현 시장이다.

창원시장 선거에 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조진래 전 경남부지사는 선거를 2개월여 남긴 시점에 경찰 소환 통보를 받았다. 그는 낙선했고, 노무현 정부 때 민원제도비서관을 지낸 허성무 현 창원시장이 당선됐다. 조 전 부지사는 올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천에서는 무소속이었던 송도근 당시 사천시장이 2017년 12월 한국당에 입당한 지 1개월 만에 수뢰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았다. 그는 당선됐지만, 선거 직전 경찰이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기각당하는 등 이 문제로 시달렸다.

2017년 7월 황운하 울산경찰청장(현 대전경찰청장) 부임도 비교적 갑작스러운 것이다. 전임자가 부임한 지 8개월밖에 안 됐는데 그가 새로 부임한 것이다. 황 청장은 부임 직후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수사팀원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자기와 친한 경찰들을 앉혔다. 그해 12월 청와대에서 하달한 '김기현 첩보 문건'을 받은 울산경찰청은 이를 근거로 시장 선거를 3개월 앞둔 작년 3월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를 받던 김 전 시장은 낙선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민주당 송철호 시장이 당선됐다.

울산경찰청은 이 시기 울산에 지역구를 둔 자유한국당·무소속 의원 3~4명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도 내사했다. 이 내용 역시 '김기현 첩보 문건'에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사실상 선거 개입을 위한 '하명 수사'를 벌였다고 검찰은 의심한다.

법조계와 정치권 인사들은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정권과 경찰이 울산·경남 지역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총력전을 편 것 같다"고 말한다. 역대 선거에서 PK는 승패를 좌우하는 요충지였다. 2016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123석)이 여당이었던 새누리당(122석)을 꺾고 1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PK 의석수 확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수세가 강한 PK에서 새누리당이 27석에 그친 반면, 야권이 13석(민주당 8, 무소속 4, 정의당 1)을 차지했다.

탄핵 정국으로 치러진 2017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낙승할 수 있었던 것도 PK 득표율이 기반이 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때마다 여권에서 '영남 후보 필승론'이 나오는 것도 PK의 득표율이 대선 승리에 필수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치러진 선거에서 확실한 PK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노무현의 유훈(遺訓)'과 같았던 PK 공략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전국 단위 선거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셈이다. 여당은 이 선거에서 부·울·경 광역단체장을 모두 차지했다. 야권은 "그 과정에서 야당 소속 자치단체장 및 후보 수사 같은 무리수가 동원됐고, 이번에 청와대 개입 의혹까지 드러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한국당이 이미 해당 사안과 관련해 작년 4월 직권남용·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11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