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성인을 입양한다.
결혼 5년 차 배우 박시은(39)·진태현(38) 부부가 최근 소셜미디어로 대학생 딸을 공개했다. 사진 속 세 사람은 한 가족처럼 다정하게 웃고 있다. 스무 살 넘은 딸을 두기엔 한참 어린 나이지만 부부는 말한다. "이모·삼촌이 아니라 진짜 엄마·아빠가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2015년 신혼여행 겸 봉사활동으로 간 보육원(제주 천사의 집)에서 고등학생이던 세연이를 만났다. 그리고 올해 입양으로 이어진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이렇게 탄생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성인을 입양한 박시은·진태현 부부를 향해 사람들은 "대단하다"며 축하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반응도 있다. '누가 나도 좀 입양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입양된 성인을 부러워하는 성인의 시선이다.
의식주를 책임져 주던 부모 밑에서 미성년자로 보호받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1인분으로서의 성인 역할이 버거운 당신. 희망을 버리지 말 것. 당신이 몇 살이든 법적으론 입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 입양'은 우리 시대에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도 같다.
어른이 어른을 입양한다
아이가 아닌 어른을 입양한다니 좀 낯설 것이다. 아기를 선호하는 입양의 세계에서는 세 살만 넘어도 입양될 가능성이 급락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입양 아동의 65%가 1세 미만, 국외 입양 아동의 97%가 3세 미만이었다. 입양 업무를 37년간 했다는 한 입양기관 관계자는 "박씨 부부처럼 보육원에서 처음 만난 아이가 성인이 되기를 기다렸다 입양하는 것은 처음 봤다. 기사를 보고 우리도 놀랐다"고 했다.
성인 입양을 '양자로 입적시킨다'는 표현으로 바꿔보자. 한결 익숙하게 들릴 것이다.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혈연관계가 있는 조카나 친척을 양자로 들이던 관습은 아직도 남아 있다. 2004년 LG그룹 구본무 당시 회장은 외아들을 잃고 동생의 아들인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입양했다. LG가(家)에서 고수해 온 '경영권은 장자에게 승계한다'는 원칙이 입양 이유였다.
재혼 가정에서 배우자의 성년 자녀(전 남편이나 전처의 자식)를 입양하는 경우도 많다. 권준석 변호사(경인법무법인)는 "재혼 가정에서 자녀가 성년이 되고 나서 뒤늦게 입양 절차를 밟기도 한다. 배우자가 교통사고 등으로 갑자기 사망하면, 계부·계모와 자녀가 법률상으로는 남남이 된다. 한 가족으로 살던 사이라도 '공식적인 내 자식'으로 정리하려고 하는 입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남성이 외국 여성과 결혼하면서 여성의 성년 자녀를 한국으로 데려와 키우기 위해 입양하기도 한다.
입양에는 입양특례법에 의한 입양, 민법에 의한 친양자입양, 민법에 의한 일반입양 등 세 종류가 있다. 입양특례법에 의한 입양은 아동 학대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입양기관을 거쳐 입양되는 경우다. 친양자입양은 친생부모와 관계를 끊어 입양의 흔적을 지우는 입양으로, 양자의 성과 본이 양부모의 것으로 자동 변경된다. 이 입양 또한 미성년자가 대상이다. 일반입양은 친생부모와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방식이다. 성과 본이 자동으로 바뀌진 않지만 가정법원에 신청해 바꿀 수는 있다. 박씨 부부처럼 성인을 입양하는 경우 일반입양으로 분류된다. 관련 통계가 궁금했지만, 보건복지부와 가정법원을 거치는 미성년자 입양과 달리 성년자 입양 통계는 보건복지부·법무부·대법원(법원행정처) 등 관련 부처 어디에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구청 가서 신고하면 입양 끝
'양자와 나이 차이가 60세 이내여야 한다더라' '돈이 많아야 한다더라' '범죄 경력이 없어야 한다더라'…, 입양 자격이 이렇게 까다롭다는 소문이 돌아다닌다. 미성년자를 입양할 때만 적용되는 이야기다. 성년자의 경우 양부모가 성년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미혼이든 기혼이든 돈이 많든 적든 입양이 가능하다. 양자가 양부모의 존속이나 연장자만 아니면(하루라도 늦게 태어났다면) 된다.
성인 입양 절차도 간단하다. 양부모와 양자가 합의해 입양 신고서를 법원이 아닌 구청·시청·읍면사무소에 제출하면 된다. 지난해 2월까지 가정법원에서 가사전문법관으로 근무한 권태형 변호사(김앤장)는 "성년자 입양은 양부모와 양자의 의사 합치로 이뤄진다"며 "양자가 성인이라도 친부모의 동의는 얻어야 한다"고 했다.
미성년자를 입양할 때는 가정법원에서 양부모의 양육 환경을 엄격히 심사한다. 입양특례법에 의한 입양의 경우 담당 법관이 양부모의 소득 등 세무 자료를 제출받아 양자를 키울 재산이 충분한지를 판단한다. 범죄와 약물 중독 경력이 있는지, 양자에게 해가 될 직업은 아닌지도 확인한다. 양부모는 25세 이상으로 양자와 나이 차이가 60세 이내여야 한다. 독신도 입양할 수는 있지만, 심사와 규정은 더 까다롭다. 35세 이상, 아동과 나이 차이는 50세 이하여야 한다.
결혼과 입양 비슷해
권준석 변호사는 "입양은 결혼과 비슷하다. 법률 계약으로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태형 변호사는 "양부모는 결혼을 앞둔 사람처럼 '나는 양자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결혼으로 하나가 된 부부처럼, 입양 가정은 피보다 무서운 법으로 엮인 가족이다.
요즘 가족의 탄생은 낭만적이기보다 손익을 셈하는 비즈니스일 때가 잦다. 결혼생활이 무너져 이혼과 재산 분할을 한다면, 입양에는 파양(罷養)과 상속이 존재한다. 성인 입양은 친부모·양부모 양쪽에서 상속받을 수 있다. 친생부모와 관계가 소멸하지 않는 일반입양이기 때문이다. 권준석 변호사는 "쉽게 말해 아빠가 두 명, 엄마가 두 명 되는 것이다. 부채도 상속된다"고 설명했다. 파양도 성년자의 경우 협의 이혼처럼 부모와 자녀의 협의에 따라 가능하다. 다만 "법률로 맺은 가족 관계를 끊는 일이기에 내 재산 주기 싫어서 하는 파양은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2010년 어느 50대 한국인 여성이 함께 지내며 정이 든 20대 파키스탄인을 입양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 성인 입양을 불법 취업을 위한 가짜 입양으로 의심해 체류 연장을 거절했다. 법원은 "체류 기간 연장 목적이 다소 있다 하더라도 입양의 진정성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며 강제 출국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입양이란 통상 대를 잇는다거나 생계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를 양육하기 위한 목적이다. 국내 정서상 이해할 수 없다"가 당시 출입국사무소의 논리였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다 큰 성인을 왜 입양하느냐'며 성인 입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박시은·진태현 부부는 왜 대학생 딸을 입양했을까. 그들은 "딸은 졸업하고 취직도, 결혼도 해야 한다.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 혼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며 "딸의 20대부터는 우리가 부모가 되어주려고 한다"고 답했다. 유아기와 청소년기에도 부모가 필요하지만, 죽을 때까지 가족은 필요한 존재라는 얘기다.
20~30대에서는 미혼·비혼과 만혼, 40대 이후로는 이혼과 고령화로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고독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성인 입양'은 낯설지만 우리가 적응해야 할 가족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