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첫 군 장성 입당 "軍 동료들, 저더러 '빨갱이'라고 해…조금 섭섭"
박찬주 전 사령관과 함께 근무하기도…"업무 능력 우수한 군인, '공관병 갑질'에 놀라"
與 검토 모병제엔 "兵 모집 어려워 50만 병력 유지 힘들 것…대만도 지원자 부족"
"北 비핵화 해법은 '평화협정'…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평화협정 맺고 전쟁 안 했다"
"'나 좀 봐달라'는 北 미사일 발사, 무시하는 게 낫다"
이병록(61·해사36기) 예비역 해군 준장이 지난 4일 정의당에 입당했다. 이 준장은 해군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난 뒤 2013년 예편했다. 장성 출신이 정의당 등 진보 정당에 입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전 부사령관은 입당식에서 "정의당은 안보에 대한 논리가 탄탄하고, 현실 감각이 뛰어난 당"이라며 "전쟁 위협이 없는 한반도 평화, 남북 공동 번영에 헌신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전 부사령관의 군(軍) 시절 동료들은 그가 좌파·진보를 내건 정당인으로 변신했다는 소식에 뜨악했다. 그는 군 선·후배 등으로부터 "왜 빨갱이들하고 어울리냐는 말도 들었다"며 "군이 보수적이긴 하지만 조금 속상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기득권에 치우치지 않는 정치, 대결보다 평화를 추구하는 정치를 해보겠다"고 했다.
지난 8일, 입당 나흘째를 맞은 이 전 부사령관을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만났다. 이 전 부사령관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나 좀 봐달라'는 의도이므로, 무시하는 게 상책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문제에 대해서는 "종료 결정을 신중하게 내렸어야 했다"면서도 "(한국 정부가) 이미 카드를 꺼냈으니 일본이 우리에게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해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임시 배치 상태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서는 "사드보다 더 고고도(高高度)를 방어할 수 있고, 정치적 논란도 없는 '이지스 어쇼어(육상 배치 미사일 요격 시스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당에 가입하게 된 이유는.
"전역한 후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세상을 바꾸려고 한 것인데 정치에 투자하면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득권에 치우치지 않는 참신한 정당에 가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정의당을 선택했다."
─정의당 입당에 대한 군 동료들 반응은 어땠나.
"밥을 사주거나, 전화를 걸어 와 '잘했다'고 격려하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군인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이지 않나. 민주당도 아닌 정의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료들이 모인 게시판에서 나를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글도 올라왔다.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이 전 부사령관이 정의당에 입당한 지난 4일, 정치권은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의 한국당 영입 문제로 시끄러웠다. 이 전 부사령관과 박 전 사령관은 동갑(1958년생)으로 2011년부터 1년 6개월간 합참 상부지휘구조 개편추진단에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소위(少尉) 임관은 박 전 사령관이 1년 선배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 전 부사령관에 대해 "부하에게 갑질을 하지 않은 신망이 두터운 덕장"이라고 소개했다. 박 전 사령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같이 일하면서 지켜본 박 전 사령관은 유머 감각도 있고 업무 능력도 우수했다. 공관병 갑질 논란이 터졌을 때 깜짝 놀랐다. 얼마 전 기자회견장에서 (갑질 의혹을 제기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게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 한 것을 보니, 시대 변화 흐름에 뒤쳐지고 국민 감정을 읽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안보 측면에서 정의당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정의당은 미래지향적이다. 대결보다 평화를 추구한다. 또 군에서도 계급이 높은 사람보다, 병(兵) 같이 계급이 낮은 사람의 복지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쓴다."
─'병사 월급을 100만원 주자'는 정의당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월 100만원 정도는 우리 경제 수준으로 볼 때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월급 20만원 주던 것을 30만원 주면 군대 매점에 한 번 더 가는 정도로 끝난다. 그러나 100만원을 주면 제대하면서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 정도는 모아 나올 수 있다. 국가에 헌신했으니 그 정도 보상은 해줘야 한다."
─민주당에선 내년 총선에서 '모병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향은 맞는다고 본다. 중국에 맞서는 대만도 2018년부터 모병제를 전면 시행하고 있다. 다만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대만도 군 지원자가 상당히 부족하다고 한다. 모병제로는 상비병력 50만명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또 병사를 모병하려면 급여를 대폭 인상해야 하는데, 그럼 초임 하사나 소위 급여도 함께 인상돼야 한다. 부사관부터 영관급, 장성까지 임금이 다 오른다."
─비핵화를 위한 미·북 협상이 교착상태다. 생각하는 북한 비핵화 방법은.
"북한이 협상을 할 카드는 핵 하나 뿐이다. 북한이 그 카드를 버리려면 우리와 미국이 북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를 줘야 한다. 종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나가는 게 시작 아닐까."
─평화협정을 체결하더라도, 김정은 입장에선 핵이 없다면 체제 보장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까.
"평화협정은 물론 깨질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자.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4번 전쟁을 벌였으나, 1978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캠프데이비드(미국 대통령 별장)로 메나헴 베긴 전 이스라엘 총리와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을 불러 평화협정을 맺기로 했고, 실제로 6개월 뒤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두 나라는 전쟁을 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남쪽 국경선이 안정되니 북쪽 레바논에 군사 개입을 하기도 했다. 평화협정이 무장해제라는 주장이 나오지만, 반대로 전쟁 억지력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변국으로 안보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북한을 의식해 한·미 연합훈련이 유예되거나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연합훈련 이름을 바꾼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독도방어훈련의 경우에도, 합참 연구위원으로 있을 때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훈련 목적이 일본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군의 태세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훈련 명칭은 동해 영토수호훈련으로 바뀌었다. 규모 축소도 어차피 우리나라에선 군단급, 사단급 기동훈련은 하지 못한다. 소규모 한·미 연합훈련은 위축되지 않고 계속하면서 미국의 뛰어난 전술을 배우는 것이 좋다."
─북한은 올해에만 12차례 미사일 등 발사체 시험을 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사실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실제 훈련이 아니라 남한을 향해 '나를 좀 봐달라'는 의도라면 무시하는 게 낫다. 미사일 전력은 우리가 북한보다 질적으로 우세하고, 양적으로도 떨어지지 않는다."
─북한은 현재의 요격 체계로는 막기 어려운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KN-23)까지 개발했는데.
"비가 오면 우산을 써도 옷은 젖는다. 옷이 안 젖게 우산을 4개, 5개씩 쓸 수는 없다. 미국은 본토가 9·11 테러 이외에 공격을 받은 적이 없어서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으려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 붓지만, 우리나라에는 항상 비가 내리는 셈이다. 비를 한 방울도 안 맞겠다고 하는 것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사드는 아직도 한국에 정식 배치되지 않았다. 중국의 보복 또한 중단되지 않았다.
"고고도 방어에 적합한 무기체계가 사드밖에 없는지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이지스함에 탑재된 SM-3 요격 미사일은 사드보다 더 고고도 미사일을 막을 수 있다. 항공모함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기 위한 것이 이지스함이므로, 모든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이지스함에서 운용하는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대를 육상에 놓은 게 '이지스 어쇼어'다. 유럽과 일본은 이지스 어쇼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한국이 한·미·일 삼각동맹에 편입돼 중국과 척을 지는 것이라는 외교적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지스함 도입 때는 문제 삼지 않았다. 이지스 어쇼어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이동식미사일발사대(TEL)에서 발사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됐다.
"북한이 ICBM을 TEL에서 발사할 수 있더라도 미국 정보자산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상당 부분 잡아낼 수 있다고 본다. 위협이 증가했더라도 심각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현무 미사일 탄두 중량을 늘리고, 무인항공기를 갖춰 정보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응하면 된다."
─지소미아가 오는 23일 종료된다. 종료 결정을 철회해야 하나.
"지소미아가 군사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태국과 체결했고, 러시아와도 지소미아를 맺고 있다. 지소미아가 종료된다고 한·미·일 삼각동맹이 깨진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렇다면 러시아와 맺은 지소미아는 무엇인가. 또 지소미아가 종료됐다고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한국이 일본에 정보를 주지 않을 리도 없다."
─그러나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일본의 경제 보복에 우리 정부가 맞대응 카드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 카드를 뽑았다. 그 때 카드였으니 신중했다. 그러나 한번 칼을 뽑았으니 쉽게 집어넣을 수도 없다. 일본이 경제 보복 문제를 양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