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직장인 절반은 "승진에 관심 없어"
직장서 '디지털 노마드' 준비族들도
"유튜브 활용 좋지만, 콘텐츠 없이는 성공 어려워"

전화영어 수업과 소자본 창업⋅콘텐츠 제작 교육을 해주는 소규모 사업체 ‘세븐아워’를 운영하는 박기연(27), 김창민(27) 부부는 전 세계를 돌며 ‘N달 살기’를 하고 있다. N달 살기의 원칙은 딱 두 가지다. ‘한국 시각에 맞춰 현지에서 7시간 일하기’ ‘그 외 시간은 현지인들처럼 살기’.

부부는 그동안 태국, 인도네시아, 호주에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 년을 살았다. 최근에는 캐나다·미국에서도 두 달간 살다 돌아왔다.

박기연(사진 오른쪽), 김창민 부부가 태국 방콕의 공유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

부부는 이런 자신들의 생활을 유튜브로도 공유하고 있다. 2016년 ‘이상커플의 이상적인 라이프’란 채널을 개설한 부부는 자신들처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공유 사무실을 직접 체험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지 기차를 타고, 자연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모습도 브이로그 형식으로 볼 수 있다.

박씨는 "최근 여행·일을 동시에 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업무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러시아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탑승하고 온 유튜버 쏘이.

구독자 16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여행 유튜버 ‘쏘이’ 역시 전 세계를 직장삼아 일하는 2030 중 하나다. ‘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이소연(26)씨는 원래 잘 나가는 노무사였다. 그를 유튜버로 이끈 것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고민이었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만한 생각이지만, 이씨는 이를 진짜 실행에 옮겨 2017년 사표를 내고 무작정 세계일주를 떠났다.

이씨는 지금까지 네팔, 인도, 터키, 폴란드, 헝가리,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쿠바,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을 여행했다. 또 이 여행 경험을 유튜브를 통해 공유하면서 돈도 벌고 있다.

◇ 회사가 행복하냐고요?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 위한 ‘수습 기간’이죠

대기업 사원증을 훈장처럼 메고 다니며 ‘평생직장’을 꿈꾸는 2030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들은 대신 업무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다. 주로 정보기술(IT) 관련 종사자들에서 시작됐던 디지털 노마드 붐은 마케팅, 예술 등 분야로 확산 중이다.

현재는 서울 강남의 한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장인 4년차 A씨(29)도 ‘2년 안에 퇴사하기’가 목표다. A씨는 취업하기까지 치열하게 준비해 왔던 자신이 마치 ‘경주마’ 같았다고 회상하면서 회사 생활도 ‘경쟁의 연속’이라고 토로했다.

A씨는 "‘부장님’ ‘상무님’처럼 되기 위해 다시 피 터지는 경쟁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의욕을 상실하게 됐다"면서 "프리랜서로서 어디든 가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역량을 쌓기 위한 일종의 ‘수습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퇴사 후 ‘제휴 마케팅 플랫폼’을 통해 광고 홍보 업무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제휴 마케팅은 광고를 온라인 콘텐츠로 제작하고, 온라인 내에서 유통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프리랜서도 얼마든지 일을 따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되고 있다. 최근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20~30대 직장인 724명을 대상으로 ‘최종 승진 목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1.7%는 ‘딱히 직급 승진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할 생각이 없어서’ ‘승진에 욕심이 없어서’가 주된 이유였다.

◇ "혼자 일하며 고립감 느낄 수도"…디지털 노마드 맞을지 자가점검 필요

전문가들은 다만 디지털 노마드가 자신에게 맞을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희정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한 연구에서 "디지털 노마드는 통상적으로 비대면 소통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이 고립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간과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직 구성원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일을 따내고 소통해야 하는 만큼 책임감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무력감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유튜버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디지털 노마드를 내세우며 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업 유튜버로 나서고 있다"며 "유튜브를 활용해 돈까지 벌기 위해서는 콘텐츠에 대한 끊임 없는 고민, 편집·소통에 대한 재주도 필요하다. 성공 확률은 1% 미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