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스는 기원전 500~460년경 아테네의 도기화(陶器畵) 장인이다. 현재까지 그의 서명이 남은 도자기는 약 40점이 전해지지만, 학자들은 실제 그가 제작한 도자기가 7만점 이상일 것으로 헤아린다.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두리스는 고대 아테네의 도기화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현대인들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신화 속 명장면과 당시의 생활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일상의 모습들이 그가 장식한 그릇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중 킬릭스, 즉 넓고 얕은 컵의 바깥 면에 그린 그리스 학교의 모습은 오늘날의 교실과 같은 듯 다르다. 음악과 문학, 글쓰기 등을 폭넓게 배우는 건 같으나 두리스의 학교에서는 학생이 서 있고 선생이 의자에 앉았다. 어린 티가 역력한 남학생은 현악기를 벽에 걸어 둔 음악실에서 아직 턱수염이 없는 젊은 조교에게 피리를 배우고 뒤이어 글쓰기를 배운다. 턱수염이 수북한 중년의 선생이 뒤돌아보는 가운데 역시 젊은 선생이 문장을 써주면 이를 보고 학생이 따라 쓸 모양이다. 그리스 문명에 문자가 등장한 건 기원전 800년경이었고 두리스 시대에서야 비로소 문맹률이 현저하게 낮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의 필기구는 최신 디지털 기기인 폴더블 태블릿과 스틸러스를 똑 닮았다. 물론 그림 속 태블릿은 왁스를 칠한 나무판을 뾰족한 스틸러스로 긁어 쓰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단순한 필기구로 기록한 그들의 철학과 사상이 수천 년간 인류 문화를 지배해왔다. 기술과 사고(思考)는 비례해서 발전하지 않는다. 눈부신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쥐고도 정작 가치 있는 생각을 써내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