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넘는 대학 강사 공채에서 다 낙방했습니다. 지난 학기까진 12~18학점 (강의)하면서 근근이 살았는데, 막막하네요. 강사법으로 더 좋아지신 강사가 있으면 만나보고 싶네요."
"지난 학기엔 'XX대학 강사'라고 논문에 썼는데, 이젠 뭐라고 써야 할지 답답합니다. 국회의원도 아닌데 '무소속'이라고 쓸 수도 없고."
1일부터 시행되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시간강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하이브레인넷'에는 이런 사연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전국 대학들이 이달 중순 시작되는 2학기 수강 신청을 앞두고 시간강사 공개 채용 합격자 발표를 연달아 내고 있다. 그런데 11년째 이어지는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을 겪는 대학들이 강사 인건비가 부담스러워 강좌를 줄인 탓에 실직하는 강사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1년 새 시간강사 4분의 1로 줄인 대학도
대구대 시간강사들은 대학 정문 앞에서 78일째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구대는 작년 2학기 420명인 시간강사를 올해 1학기 202명으로 반으로 줄였고, 오는 2학기에는 103명으로 다시 절반으로 줄였다. 1년 만에 300여명의 시간강사가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대학 측은 "등록금 동결로 재정 압박이 너무 심해 어쩔 수 없이 강의 구조조정을 한 것"이라고 했다. 실직한 한 강사는 "시간강사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홍익대 시간강사 수도 작년 2학기 학부·대학원 합쳐 211명에서 올해 1학기 77명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강사법 시행으로 한번 강사를 뽑으면 길게는 3년씩 임용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못 뽑는다는 생각에 자격 기준을 높인 대학들도 많다. 박사 수료 대신 박사 학위자를 요구하거나 3년간 3편 이상 논문 실적을 요구하는 식이다. 부산대 한 강사는 "애들 수업만 열심히 하던 강사도 많은데, 갑자기 논문 실적을 요구하니까 아예 지원 못 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신규 박사들 "우린 들러리 신세"
박사 학위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진 학자들도 "공채에서 다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작년 국회에서 시간강사법이 통과될 때부터 이른바 '갓 박사'들이 강단에 서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시간강사를 공개 채용하면 강의·연구 경험이 풍부한 기존 강사들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실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월 박사 학위를 딴 A씨는 "이번에 합격한 경우를 보니 전부 기존에 그 대학에서 강의하던 전임자였고, 우린 들러리였다"고 했다. 다른 시간강사 지원자는 "전임자를 뽑을 거면 애초에 이런 공채를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지역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예전엔 신규 박사에게 '자, 강의 한번 해보라'면서 맡길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런 기회를 주는 게 불가능하다. 학문 후속 세대가 끊길 판"이라고 했다.
대학들이 강의를 줄여 학생들의 피해도 크다. 올해 2학기 고려대가 개설한 전공과목은 작년 2학기보다 76개나 줄었고, 졸업을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핵심 교양 강좌도 같은 기간 13개(약 23%)나 줄었다. 이 중 상당수는 시간강사가 맡았던 강의다. 고려대 3학년 이모(22)씨는 "이번 학기에 3학점짜리 전공 수업 6개를 들어야 하는데, 개설 수업이 몇 개 없어서 시간표 짜기가 막막하다"고 했다.
2학기 수강 신청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강사 배정이 제대로 안 된 대학이 많아 학생들은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31일 성명을 내고 "2학기 강의 계획안이 없거나 강사 채용이 안 돼 2학기 수업 확정이 안 된 대학이 많다"면서 "강사 1만명 해고하고 제때 충원도 안 하더니, 지금 행태를 보면 대학과 교육부가 학생 수업권을 위해 뭘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대학들 "예산 확보될지 의문"
정부는 시간강사법 시행을 앞둔 지난 1학기부터 강사들이 1만명 해고되는 부작용이 나오자 지난 6월 '강사제도 안착 방안'을 발표했다.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실제 확보한 예산은 288억원으로 시간강사법 시행으로 대학들이 부담해야 할 예산(2965억원·한국대학교육협의회 추산)에 크게 못 미친다.
대학과 강사들은 "정부 지원을 늘리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왜 강사들 임금을 세금으로 줘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비정규직 제로(0) 추진 등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를 설정하고 뒷감당은 국민 세금으로 하는 일이 강사법 강행에서도 반복되는 셈이다. 서울 한 대학교수는 "강사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대학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고 강행하니 혼란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