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7일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의 이유로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 위반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이날 BS후지TV의 당수(黨首) 토론회에서 "한국은 '(대북) 제재를 지킨다' '제대로 (대북) 무역 관리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징용공 문제에 대해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분명하니, (대북) 무역 관리도 지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을 국제법(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으로 못 박고, 근거 없이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 의혹을 제기하며 자신들의 '경제 보복'을 합리화한 것이다. 과거사 다툼이 무역 분쟁을 넘어 안보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외교가에선 "양국이 과거사로 대립해도 경제·안보에선 미국을 중심으로 단결하던 한·미·일 공조의 전통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경제 제재 발동의 이유로 '수출품을 군사 전용한 부적절한 사례'를 언급했다.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5일 "(한국으로 수출된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안보상 조치는 당연하다"고 했다. 자민당 간부는 "에칭가스 대량 발주가 급히 들어왔는데 (수출 뒤) 한국 기업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에칭가스는 독가스나 화학 병기 생산에 사용되는 것으로 행선지는 북한"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일본이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설'을 흘린 것은 '추가 경제 보복'을 위한 명분 쌓기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전략 물자 등을 수출할 때 우대 조치를 해주는 '화이트 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빼기 위한 정령 개정 절차에 들어갔다.

일본의 의혹 제기에 외교부 당국자는 "대북 제재를 준수하고 있다. (일본이)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문제의) 화학물질이 한국을 거쳐 북으로 수출된 일 자체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일본이 경제 보복을 합리화하기 위해 가짜 뉴스를 동원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외교가 일각에선 "작년 정부가 남북 경협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유류 등 일부 금수품이 무단 반출됐는데, 일본이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제재가 단순히 참의원 선거용이란 관측은 안이한 발상"이라며 "일본의 보복은 2차, 3차 제재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