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들이 잡혀가는 걸 고통스러워 했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세월호 유족 사찰' 억울"
'軍적폐 수사' 5개월만에 비극적 선택

"가족들을 부탁한다고 했었는데…"
고(故)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시신이 안치된 서울 경찰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지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세월호 유족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 표적이 됐지만, 최근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분위기가 다소 반전(反轉)됐기 때문이다. 이 전 사령관의 지인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7일 오후 8시쯤 고인의 시신이 임시로 안치된 경찰병원에 동기들이 모여서 유족을 기다리고 있다.

◇"부하들이 잡혀가는 걸 가장 고통스러워 했다"
이날 오후 8시쯤 고인의 큰 형(63)은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으로 달려왔다. 시신을 확인한 그는 "동생은 부하들이 잡혀 들어가는 걸 가장 고통스러워했다"면서 "지난 주말에 동생과 술을 한잔 했는데 굉장히 괴로운 기색이었다"고 말했다.

형은 동생(이 전 사령관)의 죽음이 갑작스럽다고 했다. 이틀 뒤 조카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너무 갑자기 갔습니다."

관할서인 서울 송파경찰서를 찾은 임천영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전 사령관이 투신하기 1시간 전에도 통화했다고 했다. 임 변호사 얘기다.

"오늘 오후 1시 22분쯤 고인과 통화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 일하고 싶은데 사업 구상해도 되느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고인은 생전에 자기를 마치 죄인 취급하고 수사 받는 상황을 억울해 했습니다. 세월호 구조·탐색에 36만명 군인이 투입되고 1만대나 되는 장비도 들여서 정말 열심히 임무수행을 했는데 무슨 사찰입니까."

석동현 변호사도 "이런 걸 문제 삼는게 이해 되지 않는다, 그런 답답함이 있었던 것 같다"며 "열심히 일한 하급자들이 구속이 되고 그러니, 사령관으로서 그냥 다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에서 유서를 열람한 고인의 아들은 "지금 너무 정신이 없어서 (말하기)어렵다"며 "정리된 뒤에 말씀 드리겠다"고 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고인의 아내는 정신적 충격으로 실신한 상태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2013년 취임 이후 처음 열린 국정감사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고인의 육군사관학교 동기 4명도 병원을 찾았다. 박수경(60) 전 국방무관은 "최근 동기들한테 연락해, 가족들을 부탁한다고 했다"며 "구속될지도 모르니까 부탁하는 줄 알았지, 극단적인 마음을 먹은 줄은 정말로 몰랐다"고 했다. 이어 "수사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친구는 명예를 건드리면 살 수 없는 친구다. (명예를 잃어버린) 그런 상태를 만들어 놨으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 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임 변호사는 "5일장(葬)으로 정했고, 오는 11일 발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軍적폐 수사' 5개월만에 비극적 선택
이 전 사령관은 2014년 5~10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기무사 내에 '세월호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유가족들의 동향을 사찰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지난 11월 6일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특별수사단은 "기무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 등을 도모하기 위해 TF를 구성·운영하는 한편, 안산과 팽목항, 진도체육관 등에서 ‘충성’ 구호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카카오톡 잠금장치 활용까지 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유족을 불법 사찰한 혐의를 받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10월 돌연 기무사령관에서 경질돼 두 달 뒤 군복을 벗어 민간인 신분이었던 이 전 사령관에 대한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성훈)가 맡았다.

검찰은 군 특별수사단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 20여 일 만인 지난달 27일 이 전 사령관을 ‘포토라인’에 세웠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었다. 이 전 사령관은 검찰 조사를 받기 전 "당시 군 병력 및 장비가 대거 투입된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우리 부대 및 부대원들은 최선을 다했다"며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임무수행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기무사 TF가 2014년 5월 13일부터 10월 15일까지 만든 150여 건의 보고서를 보면 혐의 내용과 상반되거나 무관한 것이 많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건에는 사령부 지시 사항으로 ‘민간인 사찰 논란이 없도록 현장 활동 시 무분별한 정보 수집 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나 ‘자원봉사자처럼 행동하면 실종자 가족을 감시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와는 상반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 인멸의 염려가 없고 수사 경과에 비춰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현 시점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이 없다"며 구속영장 기각배경을 밝혔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7일 투신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송파구 문정동 법조타운 건물의 1층 현장에 추모 문구가 적힌 종이가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장 기각 4일 만에 이 전 사령관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세월호 유족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일했다. 우리 부하들이 선처되었으면 한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당혹한 검찰은 "군인으로서 오랜 세월 헌신해온 분의 불행한 일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속영장 기각 이후 이 전 사령관과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사령관을 불러서 조사하거나 소환 일정을 조율한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송파구 오피스텔 바닥에는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추모문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