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88·왼쪽 사진)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47·오른쪽)가 사탕을 놓고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다.
발단은 지난 1일(현지 시각) 테슬라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 머스크는 테슬라의 급속 전기충전소를 다른 전기차 업체에도 돈을 받고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한 애널리스트가 머스크에게 "왜 경쟁력 있는 해자(垓子)를 포기하려 하느냐"고 질문했다. 해자는 성을 빙 둘러 판 연못으로, 중세에 적이 성벽을 쉽게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팠다. 그런데 이 '해자'라는 말은 버핏이 '시장 지배력이 높아 경쟁 업체의 진입을 막는 장벽을 가진 기업'을 빗대 종종 사용, 투자업계에 유행시킨 단어다. 평소 버핏과 껄끄러웠던 머스크는 "적이 쳐들어오는데 방어책이 오직 해자뿐이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5일 버핏이 이 말에 반응했다.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머스크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직 꽤 좋은 해자들이 남아 있다. 머스크가 특정 분야에서 이를 뒤흔들 수는 있겠지만 사탕에서라면 우리를 따라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꼬았다. 자신이 1972년 인수해 계속 이익을 늘리고 있는 '시스캔디(See's Candies)'를 좋은 해자의 예로 든 것이다. 시스캔디는 판매는 제자리걸음이었지만 강력한 브랜드 파워로 충성 고객이 많아 매년 가격을 올려 이익을 늘려 왔다.
6일 머스크가 반격했다. 트위터에 "나는 사탕 회사를 시작하려 한다. 아마 끝내줄 것. 정말 정말 진지하다"고 했다. "해자를 만들어 사탕으로 가득 채워 버리겠다. 버핏도 투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는 글도 올렸다. 세계 3위 부자(재산 약 90조6300억원) 버핏과 세계 54위 부자(재산 약 21조2500억원) 일론 머스크가 '사탕 싸움'을 벌일 판국이다.
미국 언론들은 두 사람의 신경전엔 과거 악연이 스며 있다고 해석한다. 2015년 테슬라가 전기차를 자동차 딜러망에 의존하지 않고 고객 주문을 직접 받아 판매에 나서자 버핏은 "딜러 판매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폄하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차에 대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평가절하했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버핏의 주요 자회사인 보험사의 수익 구조가 망가질 거란 우려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머스크가 진짜 사탕 사업을 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우주 개발 회사 스페이스X의 자금 조달을 위해 화염방사기까지 팔았던 머스크가 또 한 번 '괴짜 취향'을 발휘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