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후생원 브라스밴드 이성훈(24·가명)씨는 촉망받는 유포늄(튜바처럼 생긴 금관악기) 연주자다. 그런 이씨가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어려운 환경과 싸우는 고난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씨는 20여년 전 5살 때 부모를 잃고 연고 없이 동생과 거리를 떠돌았다. 그러다 고아원(서대문구 구세군운영시설)에 들어가 지내면서 음악에 취미를 붙여 중앙대 음대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이후 각종 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연주자의 길을 다졌다. 세계적 음악가를 꿈꾸는 그에게는 시간이 나는 대로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또 다른 낙(樂)이다.
서울 시내 아동복지시설(고아원) 40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3000여명. 서울시 아동청소년담당관실은 이씨처럼 불우한 여건을 이겨내고 꿈을 이뤄낸 5명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사회의 관심과 본인의 노력이 합쳐지면 아무리 힘든 현실도 극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올해 국내 10대 그룹 중 한 곳에 합격하면서 연수를 받고 있는 박아름(23·가명)씨도 은평구 은평천사원에서 자랐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양육을 책임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천사원에 맡겨졌지만 꿋꿋하게 학업에 몰두해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이번에 취업에 성공했다. 장학금을 받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벌어 메우면서 쉬지 않고 달려온 대학 4년을 보상받은 셈이다.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강남보육원 출신 김유미(19·가명)씨는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버지는 양육을 책임지지 않는 상태에서 혼자 컸지만, 지난해 서울대에 합격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자신처럼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돌보는 아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이다. 김씨를 오랫동안 봐온 보육원 담당자는 "어렸을 때 상처가 커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만 성실하게 공부해 사회에 기여하는 아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이번에 대학입시 수시전형에서 고려대, 서울교대, 연세대에 동시 합격한 임지연(20·가명)씨도 용산구 영락보린원에서 동생 2명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어머니가 가출한 뒤 5년 전 동생들과 함께 집을 나와 복지시설에 들어갔다. 공부하랴, 동생들 챙기랴, 바쁜 와중에도 임씨는 이번 입시를 무사히 치러내며 국사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지난해 서울특별시 시민상 '어려운 환경 극복' 부문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김미림(23·가명)씨는 4살 때부터 사회복지법인 성애원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결핵으로 투병하느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절망으로 주저앉을 법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씩씩하게 살았다. 연세대 재학 시절에는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동아리 임원을 맡았으며, 방학 때는 해외봉사를 나갔다. 그 와중에 자격증 16개를 따고, 지난해 11월 동경하던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다. 김씨는 "스포츠경영학을 전공해 유아스포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김씨를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데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아이"라고 치켜세운다.
이상국 서울시 아동청소년담당관은 "아동복지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대개 마음에 상처가 있지만, 주변에서 세심하게 보살피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며 "이들이 지고 있는 마음의 짐을 나눠 들고 꿈을 이루기 위해 돕겠다는 후원자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