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 5거리에서 옥수동으로 가는 독서당길 언덕배기, 선홍색 카디건 원복을 입은 영국국제유치원 원생들이 조잘대며 뛰노는 정경이 담장 너머로 보인다. 길 건너편엔 서울독일학교,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 기독외국인학교에 이어 인도·몽골·멕시코 대사관이 고갯길 아래로 이어지고, 다시 맞은 편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집트·남아공 대사관이 줄지어 내려 온다. 거리에서 만난 미국인 K(34·영어학원 강사)씨는 한남동에 사는 이유를 "조용하면서 안전하고 말 통하고 먹을 곳 많아서"라고 답했다.
이태원·동빙고동까지 포함한 한남동 일대는 일찍이 외인촌(外人村)으로 통했다. 가나·나이지리아·네팔·노르웨이·덴마크·독일·동티모르·모로코·미얀마·벨기에·불가리아·사우디아라비아·세르비아·스페인·아르헨티나·이탈리아·쿠웨이트·태국·터키·튀니지·필리핀·헝가리 등 54개국이 이 지역에 대사관을 운영한다(작년 말 기준·용산구 통계). 뉴질랜드·이란 등은 대사 관저를 뒀고, 이탈리아는 출입 보안에 비해선 신통찮은 문화원을 운영한다.
한남동 일대가 외국인 타운이 된 연유는 무얼까? 1961년 12월 한남동 동사무소 낙성식에 미군 장성이 참석했다는 서울시 기록을 보면, 60년대 초에도 용산 미군부대로부터의 양풍(洋風)이 있었다. 60년대 말 이 지역에 들어선 외국인 전용 주택단지도 흡인 요인이었다.
전직 외교관 P(65)씨는 "용산이 구한말·일제강점기·동란 때부터 주목받은 것은 맞지만, '외교단지(diplomatic ghetto)'로 본격 개발된 시기는 남·북이 비동맹국 외교 대결을 펼친 1970년대 이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3세계 주한 공관을 당시 비교적 땅값이 싼 한남동 일대에 적극 유치한 게 본격적인 계기라는 것이다. 한남동 외교통상부·국방부 장관 공관은 각각 '외무(外務) 편의'와 '안전성'으로 유인했다. 도심과 강남(경부고속도로)을 편히 오가고 남산 청풍과 한강 전망을 누리는 입지, 미군부대를 인근에 둔 안보상 신뢰성도 이유로 꼽힌다.
24일까지 사흘 동안 한남동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던 중 경찰 순찰차가 유달리 자주 다니는 느낌이었지만, 지난 15일 스페인 대사관 직원 남편의 좌충우돌 뺑소니 사건에서 보듯 외국인 관련 사건·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볼보 승용차 매장 옆 '한남 댄디스 수퍼마켓'은 한남동의 특징과 역사를 보듬은 곳이다. 매장 한쪽 벽엔 '필리핀 여성, 보모 가능' '한국말 개인교습'이라고 영어로 적은 구직 ·구인 공고가 빼곡하다. 김재용(58) 사장은 1970년대 초반, 이 자리에 있던 '한남 슈퍼마켓' 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당시 오렌지를 파는 시내 유일한 곳, 외국 문물을 접할 수 있는 드문 가게였다. 물자가 귀한 시절인데도 없는 게 없어, 외국인 거주민·관광객과 장안의 고관대작 부인이 몰렸다"고 말했다.
한남동은 거주지로서의 선호도에 비례해 임차료가 높다. 보증금 없이 2년 또는 3년치 렌트비용을 선납하는 방식이 여기선 통용된다. 50평형(165㎡) 시세(월 450만~550만원)대로라면 2년치 1억8000만~1억3200만원을 한몫 선납해야 한다. 한 부동산중개인(34)은 "외국인 세입자가 '백열전구 하나가 나갔는데 와서 갈아달라'고 요구하는 건 고약한 축에도 못 든다"면서 "별별 일 겪다 보니 국적별 기피대상(blacklist) 순위를 매길 정도다"라고 말했다.
한남동 외교가는 문화의 거리로 새 단장을 한다. 갤러리 서화가 2009년 3월 UAE 대사관 근처에, 갤러리 스케이프가 지난 20일 멕시코대사관 뒤편에 이전·개관했다. 손경애 스케이프 대표는 "편안하고 오가기 좋은 한남동만의 매력이 있다"고 했다. 오는 11월 문을 열 뮤지컬 전용공간 '블루 스퀘어'는 청년·공연 문화의 새로운 거점이 될 거란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