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내 고등학교에서 이번 새학기부터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을 없애기로 한 방침〈조선일보 3월 1일 A15면 보도〉이 일선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불만이 계속되고, 학원 운영시간 단축 방침도 시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교육청 지침 "원하는 학생만"
인천시교육청은 지난달 일반계 고등학교 학교장 모임을 갖고 '야간 자율학습 운영 지침'을 전달했다. 자율학습 시행 방식은 학교별로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들은 뒤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하되, 반드시 원하는 학생만 참가시키라는 내용이다. '자율학습'이라는 이름 그대로 학생들에게 자율적 결정권을 주라는, 당연한 얘기다. 이렇게 되면 정규학습이 끝난 뒤 원하는 학생은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고, 학원에 갈 학생은 가면 된다. 요즘 많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 뒤 학원을 다니는 현실을 감안해 공교육이 학생과 학부모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점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학생들 "여전히 강제 자율학습"
하지만 이 방침은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여전히 밤 10시(1~2학년은 대개 9시)까지 학교에 남아 강제적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학원에 가려면 학원비 영수증 등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증명을 교사에게 보여주고, 학부모나 학원에서 교사에게 전화를 해 자율학습을 빼달라는 부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교사에 따라서는 이런 절차를 거쳐도 보내주지 않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최근 부평구에 있는 한 남자고등학교를 찾아가 복도에서 만난 3학년 학생들에게 자율학습이 정말 자율적으로 진행되는지 물어봤다.
"아니요" "반별로 조금 다른데 대개 10시까지 안 보내줘요" "학원 영수증 갖다 줘도 안 보내주는 선생님도 있어요"….
마침 이를 본 한 고3 교사가 다가와 신분과 경위를 묻더니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그런 것 묻지 말라"고 했다. "원칙대로 지키고 있으면 물어본들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 하니 "아무튼 학교에서 취재는 안 된다"며 막무가내였다.
이어 들른 근처의 여고와 남구에 있는 한 남자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반응은 거의 같았다.
이는 요즘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끝없이 올라오고 있는 항의만으로도 알 수 있다.
"강제 야자(야간자율학습) 왜 시키는 겁니까? 학교에 남아서 떠들라고요? 되지도 않는 공부 잠만 퍼자라구요? 제 친구는 공부는 힘들어 미용 쪽으로 가려하는데 야자를 안 빼주네요. 방학 때 학원 다니며 몇백만원 들였는데 (개학 하니) 야자 안 빼줘 돈만 날아갑니다" "인천의 학력 수준이 전국 꼴찌인 이유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바로 야자 때문입니다. 야자를 하려면 한 반에 한 선생님을 배치해 질문을 받든가 관리를 해야지. 한 학년을 한두 선생님이, 그것도 한 시간에 한두 번 돌까말까. 자는 애들, 음악 듣는 애들, 떠드는 애들" "강제로 학교에 잡아두면 공부가 되나요? 늦게 집에 보낸다고 과연 학원에 안 갈까요? 제발 현실에 맞는 행정 좀 합시다. 학생들만 고달프게 하지 말고"….
이에 대해 각 학교에서는 "아직은 자기 통제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다" "부모가 보내는 걸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학교만 시행하면 옆에 있는 학교들과 비교돼 문제가 된다"는 등의 해명을 하고 있다.
◆교육청 "학교가 알아서 할 일"
시교육청은 지난달 야간 자율학습 운영 지침을 밝히면서 "이를 각 학교가 제대로 지키는지 계속 지도·감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독은커녕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자율학습인데 교육청이 일괄적으로 제재나 조사를 한다는 것도 우습고, 이는 학교별로 알아서 할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교육청은 아무 대책도 없이 '자율학습 자율화' 방침을 밝힌 뒤 모든 책임을 학교에 미루고, 일선 학교에서는 교육청이나 다른 학교 눈치만 보고 있는 꼴이다. 현실적이고 확실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