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내 고등학교에서 이번 새학기부터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을 없애기로 한 방침〈조선일보 3월 1일 A15면 보도〉이 일선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불만이 계속되고, 학원 운영시간 단축 방침도 시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교육청 지침 "원하는 학생만"

인천시교육청은 지난달 일반계 고등학교 학교장 모임을 갖고 '야간 자율학습 운영 지침'을 전달했다. 자율학습 시행 방식은 학교별로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들은 뒤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하되, 반드시 원하는 학생만 참가시키라는 내용이다. '자율학습'이라는 이름 그대로 학생들에게 자율적 결정권을 주라는, 당연한 얘기다. 이렇게 되면 정규학습이 끝난 뒤 원하는 학생은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고, 학원에 갈 학생은 가면 된다. 요즘 많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 뒤 학원을 다니는 현실을 감안해 공교육이 학생과 학부모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점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야간 자율학습의 자율화 방침이 시행됐음에도 일선 고교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진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고등학생들.

학생들 "여전히 강제 자율학습"

하지만 이 방침은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여전히 밤 10시(1~2학년은 대개 9시)까지 학교에 남아 강제적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학원에 가려면 학원비 영수증 등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증명을 교사에게 보여주고, 학부모나 학원에서 교사에게 전화를 해 자율학습을 빼달라는 부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교사에 따라서는 이런 절차를 거쳐도 보내주지 않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최근 부평구에 있는 한 남자고등학교를 찾아가 복도에서 만난 3학년 학생들에게 자율학습이 정말 자율적으로 진행되는지 물어봤다.

"아니요" "반별로 조금 다른데 대개 10시까지 안 보내줘요" "학원 영수증 갖다 줘도 안 보내주는 선생님도 있어요"….

마침 이를 본 한 고3 교사가 다가와 신분과 경위를 묻더니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그런 것 묻지 말라"고 했다. "원칙대로 지키고 있으면 물어본들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 하니 "아무튼 학교에서 취재는 안 된다"며 막무가내였다.

이어 들른 근처의 여고와 남구에 있는 한 남자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반응은 거의 같았다.

이는 요즘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끝없이 올라오고 있는 항의만으로도 알 수 있다.

"강제 야자(야간자율학습) 왜 시키는 겁니까? 학교에 남아서 떠들라고요? 되지도 않는 공부 잠만 퍼자라구요? 제 친구는 공부는 힘들어 미용 쪽으로 가려하는데 야자를 안 빼주네요. 방학 때 학원 다니며 몇백만원 들였는데 (개학 하니) 야자 안 빼줘 돈만 날아갑니다" "인천의 학력 수준이 전국 꼴찌인 이유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바로 야자 때문입니다. 야자를 하려면 한 반에 한 선생님을 배치해 질문을 받든가 관리를 해야지. 한 학년을 한두 선생님이, 그것도 한 시간에 한두 번 돌까말까. 자는 애들, 음악 듣는 애들, 떠드는 애들" "강제로 학교에 잡아두면 공부가 되나요? 늦게 집에 보낸다고 과연 학원에 안 갈까요? 제발 현실에 맞는 행정 좀 합시다. 학생들만 고달프게 하지 말고"….

이에 대해 각 학교에서는 "아직은 자기 통제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다" "부모가 보내는 걸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학교만 시행하면 옆에 있는 학교들과 비교돼 문제가 된다"는 등의 해명을 하고 있다.

교육청 "학교가 알아서 할 일"

시교육청은 지난달 야간 자율학습 운영 지침을 밝히면서 "이를 각 학교가 제대로 지키는지 계속 지도·감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독은커녕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자율학습인데 교육청이 일괄적으로 제재나 조사를 한다는 것도 우습고, 이는 학교별로 알아서 할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교육청은 아무 대책도 없이 '자율학습 자율화' 방침을 밝힌 뒤 모든 책임을 학교에 미루고, 일선 학교에서는 교육청이나 다른 학교 눈치만 보고 있는 꼴이다. 현실적이고 확실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