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첫아이를 낳고 출산휴가를 보낼 때(2007년)였어요. 집에만 있다 보니 인터넷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더군요. 널린 게 음란·폭력물이었죠. 저 같은 성인도 이런데, 아이들은 어떨까 생각하니 끔찍했어요. 갓 태어난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행동'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유현(36)씨는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최근 '인폴루션ZERO'라는 NGO를 만들었다. 인폴루션(info -llution)이란 인포메이션(informa -tion·정보)과 폴루션(pollution·공해)을 합성한 신조어다. 인터넷·방송에 넘쳐나는 음란·폭력물과 개인정보 유출을 없애가자는 뜻에서 이름을 '인폴루션ZERO'로 했다. 박씨는 미국에서 살던 2008년 남편과 '인폴루션ZERO' 운동을 시작했고, 작년 6월 안세재단 산하에 본부를 마련했다. 직원 5명을 두고 서울 명동에 사무실을 열었다.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다.

그는 작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을 오가며 컨설턴트로 일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후, 미 하버드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미디어산업을 담당했었다.

"서울에 와서 '인폴루션'에 대해 업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어요. 하지만 모든 이슈가 정치·경제에 집중됐어요. 인터넷에서의 정치적 갈등이라든가 기간산업으로서의 게임산업의 미래… 이런 식으로요. 정보공해로 인해 아이들이 입을 피해에는 무관심했죠. 너무 화가 났어요.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박 대표는 게임업체·케이블채널·포털사이트만 비난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했다. 미디어산업이 '돈' 되는 선정적 콘텐츠에 경쟁적으로 뛰어든 지 이미 오래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에게 '인폴루션ZERO에 참여해달라'는 장문의 제안서를 보내기도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박 대표는 "인폴루션ZERO(약칭 iZ)는 가정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산모에게 '아기의 정상적 뇌 발달과 창의력 계발을 위해 가급적 만 2세가 될 때까지는 어떤 형태의 화면(screen)도 접하게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우리는 엄마들이 두 살 된 아이를 컴퓨터 앞에 앉히고, 스마트폰도 쥐여 주죠."

'인폴루션ZERO'는 다음 달 서울시와 '100만 가족 iZ약속' 캠페인을 벌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부모와 아이가 정보공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운동이다. 4월에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특별전 '디지털세계의 정보공해, 인폴루션'을 연다. 하버드 및 스탠퍼드대 등과 '인폴루션의 사회적 비용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오늘(24일) 홈페이지(www.infollutionzero.or.kr)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