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 사태와 6자회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한국전 종전(終戰) 선언에 공동으로 서명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은 일단 미국 대북정책의 변화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실현 가능성 있는 얘기일까. 한다면 언제쯤 될까. 남북 및 외교관계 전문가들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했다.

◆실현될 수 있나

부시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종전 선언에 서명하는 것은 북한의 모든 핵 폐기가 완성된 뒤다. 미국은 지금까지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라는 전제 조건에서 한번도 후퇴한 적이 없다. 따라서 현재로선 부시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공동 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부터가 먼 미래의 일이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종전 선언은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작게는 휴전선 관리 방법, 북방한계선 정의부터, 크게는 주한미군 주둔 문제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아무 전제조건 없는 종전 선언은 불가능하다”며 “진짜 어려운 구체적 전제조건에 대한 논의가 없다면 의미 있다고 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언제, 어떤 방식이 될까

우선 시기 문제는 6자회담이 순조롭게 풀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6자회담의 끝은 미북 관계 정상화이고 종전 선언은 그 직전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이 충족돼도 당사자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미국은 종전 선언 혹은 평화체제의 서명 당사자가 남북한이라는 입장이다. 남북이 먼저 서명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하는 식이다. 이른바 2＋2 방식이다. 우리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정전협정의 당사자에 남한은 포함돼 있지 않으므로 “미국만이 상대”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종전협정에 서명하는 상황이 되면 이런 정도의 절차적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피그미’에서 ‘서명 상대국’까지

먼 장래의 일이긴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기존 미국 입장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시 대통령은 과거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사석에서는 ‘피그미’라고까지 말했다. 이어 기자회견 등을 통해서도 ‘폭군’, ‘버릇없는 아이’ 등으로 불러왔다. 협상 파트너로는 물론 인간적인 대접까지도 해줄 수 없다는 극단적인 적대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함께 서서 서명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북한이 주장하는 대북 적대 정책 포기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라며 “부시 대통령이 말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로 이해된다”고 했다.

이에 대한 북한의 예상되는 반응에 대해서는 “북한이 당장 원하는 것은 BDA 등 금융제재 해제나 경수로 제공같이 구체적인 것으로 거대 담론에는 큰 관심 없을 것”(남성욱 고려대 교수) “대북 적대 정책 철회의 상징적 제안으로 그냥 무시하기에는 아까울 것”(국책연구기관 연구원)으로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