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정책

“강남 고가주택만 잡으면 집값이 잡힐 줄 알았는데 서민주택까지 들썩일 줄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정부 당국자는 수도권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값이 오르자 “당혹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11월 들어 서둘러 릴레이 주택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는 것도 주택시장의 이상기류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최근 아파트값 오름세의 특징은 비강남권의 득세이다. 집값 상승에 불안을 느낀 수도권과 강북권 30대 신규수요와 40대 교체수요가 한꺼번에 몰렸다. 매물 공급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시장에 병목현상이 생겨 호가 상승이 계속됐다. 구리 토평지구나 은평구 불광동, 마포구 공덕동 일대에선 많게는 한 달 새 1억원 이상 오른 곳도 많다. 정부가 당초 생각하지 못했던 돌발변수다. 그 동안 집값 불안의 진앙지 역할을 했던 강남은 비강남권이 급등하자 따라 오르는 형국이다. 지난해만 해도 ‘강남권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강남권 대형 아파트만 가격이 집중적으로 올랐지만 올해 가을은 딴판이다.

▲ 정부가 신도시 조성 발표를 한 뒤 인천 검단 주변 아파트값은 급등했다. 사진은 검단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왼쪽) 10월 말 인천 검단 주변 집값이 뛰자 정부가 투기단속을 펴고 있다.(오른쪽)

정부 당국자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 4분기 아파트값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2007년 1월 양도소득세가 중과되는 1가구 2주택자의 절세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예측이 빗나갔다.

이런 예측을 빗나가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고분양가이다. 은평 뉴타운과 파주에서 고분양가 후폭풍이 불자 인근 지역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집주인들은 자신의 집값이 분양가보다 턱없이 낮자 “내 집을 싸게 팔 수 없다”며 매물을 거둬들였다. 서울시가 은평 뉴타운의 분양 시기를 미뤘지만 시장을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다 서울시가 뉴타운 후보지를 무더기로 발표하면서 집값 오름세는 확대됐다.

강북권의 한 중개업자는 “은평 뉴타운 고분양가 후폭풍이 의외로 센 것 같다”며 “그 동안 대기하고 있던 수요자들에게 ‘지금이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조급함을 갖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인천 검단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수요자들이 원하는 곳이 아닌 외곽에 들어서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되레 그 동안 거의 오르지 않은 인천 서북부 집값만 올려놓았다.

그 동안 강북권이나 수도권의 집값이 덜 올라 저평가돼 있다는 투자자의 인식도 오름세를 탄 요인이다. 마포구 공덕동 김모(45) 중개업자는 “주민들이 ‘우리 동네가 왜 강남과 가격차가 이렇게 나야 하느냐. 강남의 80% 정도는 따라붙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쌍춘년인 올해에 결혼을 한 신혼부부나 30대 실수요자까지 내집 마련에 나서면서 비교적 저렴한 강북권 아파트 상승 압력이 커졌다. 이 바람에 최근 강북권 20~30평형대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

강북권의 중소형 아파트는 담보대출 규제를 강남 고가주택보다 덜 받는다. 은행권에선 집값(담보대출 인정금액)의 60%, 제2금융권에선 많게는 90%까지 빌릴 수 있다. 이러다보니 전세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집값이 오르자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자’로 뒤늦게 합류한 것이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금융 여건이 좋아 무주택자들이 과거에 비해 ‘상황 변화’에 반응하는 민감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출금 2500만원을 빌리려면 주택부금 통장에 2년 정도 가입해야 가능했다. 이 때문에 전세거주자들이 집값이 올라도 이렇다 할 대처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전세 금액에 대출을 최대한 동원하면 20~30평형대는 언제라도 살 수 있다. 레피드도시개발 권대중 사장은 “무주택자들이 상대적으로 값이 싼 강북권이나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면 기존 매매시장으로 뛰어들어 집값 안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아파트값은 8월 초부터 바닥권에서 거래가 이뤄지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수요자들이 오른 가격에선 매수를 하기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북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강남권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강남 아파트값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그 동안 엄두를 못냈던 비강남권 사람들의 강남권 진입 수요가 크게 늘었다. 서초구 잠원동 양지공인 이덕원 사장은 “최근 강남 중소형 아파트를 산 사람들의 30% 가량이 강북이나 수도권 거주자들”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판교 2차 청약 이후 탈락자들이 강남 재건축 등 투자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개포동 남도공인 이창훈 사장은 “자금력이 있으면서 판교 중대형 청약에서 떨어진 이들이 강남 재건축을 사겠다고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중소형 위주 청약을 받은 3월 분양 때만 하더라도 탈락자들이 강남권 아파트를 살 형편이 못됐다. 하지만 이번 2차 청약의 경우 탈락자들이 기존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판교 뒷바람 효과’가 예상보다 컸다는 게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상당수 시장 참여자들이 내년 대선 때 재건축 등 규제가 지금보다 완화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시장을 억누르는 재건축 개발 부담금 등이 시행되고 있지만 매도자들은 “이런 규제가 언제까지 가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양도세에 대한 규제 완화 기대도 한몫하고 있다.

‘내년에 2주택자의 경우 양도세 기본 세율이 9~36%에서 50%로 올라간다 해도 값이 더 오르면 지금 파는 것보다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최근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다주택자들이 연내 매각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가뜩이나 매수자가 몰리는 상황에서 매물난이 심해지자 호가가 계단식으로 급등했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김갑열 교수는 “양도세 부담 등으로 매물이 줄면서 비정상적으로 호가가 치솟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1월 들어 정부가 잇따라 대출규제, 공급확대 등 안정책을 내놓고 있다. 단기 효과는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이런 대책의 약발이 계속 간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일정기간 조정을 받은 뒤 내년에 다시 오를 가능성이 있다. 내년엔 그나마 세금 중과를 피하려는 1가구 2주택자의 매물도 나오기 어렵다.

올 초 시장 참여자들은 3주택자 매물이 씨가 마르면서 약간의 매수세만 붙으면 호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경험했다. 내년에 이런 다주택자의 매물이 없다면 매물은 1주택자의 교체 매물 등 일부에 그친다. 양도세 완화 같은 조치를 통해 매물에 숨통을 터주지 않는 한 이런 구조적 시장 불안을 해결하긴 어려울 것 같다.

더욱이 주택 수요가 왕성한 베이비붐세대의 내집 마련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언제든지 집값이 불안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기다리면 20~30% 싼 아파트를 공급해 주겠다”고 하지만 이들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지도 의문이다. 내외주건 김신조 시장은 “시장 옥죄기를 하기보다는 주택 정책을 시장친화적으로 대수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