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의 선거자금이 투입되고 유례없는 치열한 대접전으로 이번 미국 대선은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막판 오하이오주 개표시비를 정점으로 미국 사회가 큰 혼란과 분열로 치닫지 않겠는가라는 우려가 증폭했으나 결국 안정과 통합 국면에 들어섰다.

▲ ▶ [화보]부시 美대통령 재선 성공

재선에 승리한 조지 W 부시(Bush) 대통령과 아깝게 패한 존 케리(Kerry) 민주당 대선후보 등 두 지도자가 3일 한목소리로 “분열을 치유하자”며 화합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케리 선거진영은 당초 오하이오주의 잠정투표 개표를 위해 끝까지 싸울 태세를 보였으나, 승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날 오후 2시 보스턴에서 신속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해 ‘아름다운 패자’라는 호응을 받았다. 그는 “선거결과는 유권자들이 결정하는 것이지 지리한 법적 소송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지난 대선의 플로리다주 재개표의 혼란이 재현되는 것을 원치 않는 여론을 수용한 것이다.

케리가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한 직후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의 레이건 빌딩에서 테러전 수행을 위한 강력한 의지와 함께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당선연설을 통해 케리의 통합과 화합 메시지에 화답했다. 부시 대통령은 케리와 전화통화를 했다면서, “케리는 훌륭한 선거전을 펼쳤으며 케리와 그의 지지자들이 보여준 노력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칭찬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지지자들이 내게 보여준 신뢰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그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모든 책무를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앞서 부시 대통령은 3일 새벽 이 장소에서 당선축하행사를 열 예정이었으나 케리가 불복을 선언하면서 이를 연기했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폭넓은 지지가 필요하다면서, 케리 지지자들에게도 통합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미국은 중대한 과제를 부여받아 힘과 용기를 가지고 이에 대처해왔다”면서, “미국은 스스로를 지키고 전 인류의 자유를 위해 봉사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놀라운 나라를 이끌게 돼 자랑스럽다”면서 이러한 노력 덕분에 희망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케리 후보는 이날 보스턴의 페네일 홀에서 러닝메이트인 존 에드워즈(Edwards) 상원의원의 소개연설에 이어 운집한 지지자들 앞에 섰다. 케리는 “우리가 조금 늦게 그리고 조금 부족한 상태로 여기 오게 돼 죄송하다”고 말문을 연 후, 부시 대통령에게 축하전화를 걸어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위험할 정도로 분열된 미국의 상황과 그에 따른 통합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또 지지자들에게 “미국은 통합돼야 하며 더 많은 온정을 원하는 상황”이라며 국민통합 노력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다.

평소 유권자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어법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평을 들었던 케리 후보는 이날 전례없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는 “우리가 열심히 싸운 만큼 결과가 약간 달랐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신념을 잃지 말라. 선거는 또 있을 것이며 그때 여러분의 노력과 표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지자들을 격려했다. 케리는 또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과 포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지지자들에게 애정을 표시했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사실 이번 대선은 미국사회가 얼마나 분열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계기였다. 지역과 종교, 성별, 결혼 여부, 동성애자 여부, 교육수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은 철저하게 두 세력으로 나누어져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 진영은 선거유세 기간 동안 인신공격까지 하면서 서로를 무자비하게 깎아내렸지만, 선거가 끝나자 즉시 ‘상처의 치유’에 나섰다. 유세 동안에는 치열하게 싸웠더라도 일단 승부가 결정된 후에는 승자와 패자가 서로를 인정하며 지원을 약속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