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외교갈등을 벌이고 있는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을 상대로 연일 강공(强攻)을 펼치고 있다. 터키가 간첩 혐의로 억류하고 있는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석방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결사항전을 선언한 '술탄(옛 이슬람 황제를 칭하는 말)' 에르도안과 힘으로 누르려는 트럼프가 충돌하면서 파장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20일(현지 시각) AP통신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이날 "부당하게 높은 관세를 매겼다"며 미국을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했다. 지난 10일 미국이 터키산 철강제품과 알루미늄 관세를 두 배로 올린 데 대한 대응 조치다. 에르도안은 지난 15일 미국산 자동차에 120%, 주류에 140%에 달하는 보복관세도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터키 압박을 멈출 생각이 없다. 그는 20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터키가 하는 짓은 매우 슬픈 일이며 그들은 심각한 실수를 하고 있다"며 "(터키에) 어떠한 양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브런슨 목사를 석방하지 않으면 계속 보복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양국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터키 주재 미국 대사관을 향한 총격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20일 터키 수도 앙카라의 미국 대사관 앞을 지나는 흰색 차량에서 5~6발의 총격이 가해졌으며, 현지 경찰이 용의자 2명을 체포해 범행 동기 등을 조사 중이다. 사상자는 없지만 터키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양국 간 갈등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최강 미국과의 갈등으로 곤궁한 처지에 몰린 에르도안이 물러서지 않는 이유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우선 경제를 파탄으로 내몬 실정(失政)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 있다. 에르도안은 "베개 밑 달러나 금을 리라로 바꾸라"며 미국과의 갈등을 '애국심 투쟁'으로 몰고 가고 있다. 미국과의 대결을 통해 내부 지지세 결집을 시도한다는 얘기다.
또 에르도안이 위기 시 우군(友軍)이 도와줄 것으로 기대하고 미국에 세게 나간다는 분석도 있다. 터키 리라화가 폭락하자 에르도안은 지난 15일 오랜 우호 관계를 쌓은 중동의 부국(富國) 카타르에서 150억달러(약 16조8000억원)를 수혈받기로 해서 급한 불을 껐다. 게다가 유럽의 터키 투자 규모가 막대하기 때문에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넣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실제 독일에서는 연정(聯政)을 구성하는 기민당과 사민당이 터키 지원 여부를 놓고 논란 중이다. 기민당을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터키에) 긴급히 재정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안드레아 날레스 사민당 대표는 "터키의 경제적 안정이 모두에게 이익"이라며 터키를 돕자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