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진통이 많았다. 지속됐던 정치권의 혼란이 끝나기 무섭게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프랜차이즈 업계부터 퍼져나온 '갑질' 논란, 가뭄과 농작물 피해, 살충제 달걀 파동과 생리대 유해 물질 논란, 지진, 중국과의 갈등 장기화, 북핵 이슈 등… 국민은 불안, 두려움, 분노에 떨어야 했다.
경제는 미세하게나마 개선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와 더불어 수출에도 힘을 받고 증권시장이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여전히 2018년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경제 분위기는 개선됐지만, 가계부채가 민간 소비를 짓누른다. 한류 확산으로 세계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평창 동계 올림픽 등 대형 이벤트의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터질 때마다 금융시장은 물론 관광산업까지 식어버릴 위험도 여전하다. 새 출발 한 정부는 '사람 중심'이라는 정책 기조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많다.
2017년을 정리하며 새해는 좀더 발전된 사회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정리한 우리 사회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소비 트렌드 키워드'를 모았다.
2018년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
핵심은 '사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고 널리 알린 '소확행'은 행복은 멀리 있지 않으며 거창하지도 않다는 마음가짐의 개념이다.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 하고 싶은 것, 지금 하면서 살자"는 2017년의 욜로소비 열풍에 이어, 2018년 소비자들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실현가능한 행복을 일상에서 구한다. "꼭 특별한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의 매일매일은 충분히 소중하고 중요하다"며 행복을 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다. 행복에 대한 인식은 ▲미래에서 지금으로 ▲특별함에서 평범함으로 ▲강도에서 빈도로 변화하면서 일상에서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중요해졌다.
소확행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계도적 메시지가 아니다. 오히려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천편일률적 삶의 목표에 대해 "이런 행복도 존재했다"고 외치는 일종의 반기다. 훌륭한 사람이 되길 꿈꾸지 않는다고 해서, 더 근사한 삶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오늘 하루가 가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다만 소확행으로 인해 마냥 현실에 안주하거나 아예 미래에 대한 꿈을 접는 패배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물질'을 추구하는 이유로 소확행을 활용하는 상업주의적 합리화도 경계해야 한다.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매일 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그려야 하며 행복에는 정답이 없다는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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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주관적인 방식으로 공허감 채우기
가성비의 열풍 속에서 단순히 제품의 '성능'이 아니라,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 즉 가심비(價心比)를 추구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성능에 객관적인 표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심리적 만족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가심비는 가성비에 주관적·심리적 특성을 반영한 개념이다.
가성비의 초점이 '상품'의 가격과 객관적 성능에 있다면, 가심비의 초점은 '소비자'가 해당 상품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가?' 하는 주관적 판단에 있다. 이 주관적 판단은 마치 '위약(僞藥 · placebo)'처럼 정확하지도 일관되지도 않기에 가심비에 입각한 소비를 플라세보 소비라고도 부를 수 있다. 소비가 주는 위약효과는 특히 소비자 안전에 대한 심리적 불안을 잠재워줄 때, 소비자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지출할 때, 소비자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수 있을 때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가심비 소비에서도 무작정 고가의 제품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최저가 구매나 '일점호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가심비의 분모에 해당하는 가격을 통제한다.
불신·불안·불황의 3불에 시달리는 소비자가 가성비를 따질 때, 그 성능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다름 아니라 심리적 안정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개념이다.
*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사람이 갖는 사회적·인지적·감정적 편향 때문에 일어나는 심리학적 현상을 통해, 이상적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을 전제로 한 고전경제학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규명한다. 행동경제학의 주창자인 하버트 사이먼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주류 경제학이 철저히 무시하는 감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는 것을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개념으로 설명하며 최적화(optimizing) 원리 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선택한다는 만족화(satisfying) 원리를 주장했다.
* 일점호화: 평소에는 저렴한 물건을 골라 구매하지만 특정 물품은 비싼 것을 구입하는 소비 성향. 일반 소비재는 저렴한 것을 선호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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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새로운 '직딩'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이 적당히 벌면서 잘 살기를 희망하는 젊은 직장인 세대의 라이프스타일로 등장했다. 워라밸 세대는 대한민국 소비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시기에 태어난 1988년생 이후부터 이제 갓 사회로 진입한 1994년생까지의 세대를 직장생활의 관점에서 규정하는 명칭이다. 워라밸 세대는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불완전함 그대로를 수용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자기애를 높이며, 돈보다 스트레스 제로를 추구한다. 또한, 개인 생활보다 직장을 우선시하는 과거 세대와 달리 일 때문에 자기 삶을 희생하지 않는다.
워라밸 세대는 호모 나이트쿠스 혹은 나포츠족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이들이다. 이들에게는 취미 생활도 '해야 할' 일이기에 '저녁 사수'에 심혈을 기울인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6년에 직장인 4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2030 직장인의 53%가 "상사가 퇴근하지 않아도 내 일이 끝나면 퇴근한다"고 응답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기를 희망하는 워라밸 세대에게 일과 여가활동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들에게 특히 나 자신(myself), 여가(leisure), 성장(development)은 희생할 수 없는 가치다. 과중한 업무와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패스트 힐링을 추구하고, 취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기도 한다. 직장생활을 퇴직 준비의 동의어 정도로 여기는 이 신세대 직장인의 가치관은 발전연대의 사고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욜로·가성비·소확행 등 새로운 트렌드를 전면에서 받아들이는 주역인 워라밸 세대,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2018년에는 이들이 소비 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리라고 내다봤다.
* 호모 나이트쿠스(homo nightcus): 밤을 뜻하는 '나이트(night)'에 인간을 뜻하는 접미사 'cus'를 붙인 신조어로, 올빼미족과 비슷한 심야형·밤샘형 인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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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기사를 기다리지도, 매장에서 점원을 찾지도 않는 시대가 왔다. 공급자 측에게도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가급적 줄이면서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기술을 채택하는 것이 비용절감과 즉각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중요해지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이러한 무인(無人) 서비스를 함축하는 개념으로 사람과의 접촉, 즉 콘택트(contact)를 지운다는 의미에서, 언택트(Un+tact)라는 조합어를 새롭게 제시한다. 언택트는 무인 항공기의 '무인(unmanned)', 자율주행 자동차의 '셀프(self)', 사람 대신 로봇이 작동하는 공장의 '자동화(automation)' 등,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비대면이라는 공통 분모를 지닌 서비스들의 개념을 통합한 개념이다.
언택트는 상황 적응적이고 개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단순한 무인이나 비대면 기술을 넘어선다. 언택트 기술의 보편화는 일자리 감소와 같은 노동시장의 변화,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를 소외시키는 '언택트 디바이드'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지만, 반면에 그동안 무료로 인식됐던 인적 서비스가 프리미엄화하면서 서비스 차별화가 핵심 요소로 등장하는 등 관련 시장의 변화도 불러올 것이다. 소비자의 요구가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빠른 속도로 변하는 지금, 기술을 통한 가치 제공은 언제 어느 시점에서 연결하고 어떻게 언택트 하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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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렌시아는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을 의미한다. 인생이라는 매일매일의 전투에서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안식처로서 케렌시아의 공간이 절실하다. 제3의 공간인 케렌시아에서 사람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케렌시아는 단순한 수동적인 휴식을 넘어서 능동적인 취미와 창조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기존의 선입견을 넘어 상호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하고 책맥카페처럼 신선하고 창의적인 문화콘텐츠로 변신하여 고객들에게 다가서기도 한다.
1코노미 시대에 나홀로족의 최적의 케렌시아는 '집'이다. 신경건축학이 강조되는 시대에 집 공간을 푸르른 식물로 꾸미려는 플랜테리어 트렌드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맨케이브(man cave)는 고도의 취향을 갖추어가는 남성들에게 심리적 위안과 안정을 주는 자기만의 사적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케렌시아는 오프라인을 넘어서 온라인 공간까지 확장되고 있다. 사람들은 온라인의 케렌시아에서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억압되었던 마음을 풀어헤치며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고 있다. 분석센터는 향후 케렌시아는 공간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 신경건축학: 신경건축학은 말 그대로 신경과학(neuroscience)과 건축학(architecture)을 합친 말이다. 사람이 어떤 건축물이나 공간을 마주할 때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하는 학문이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 분비되는 세로토닌이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을 정량적으로 측정해 뇌가 행복하다고 반응하는 건축이나 공간을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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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감정'이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경제
사람들이 돈을 쓰는 이유가 재화에서 서비스로 이동하고 있다. 아파트를 고를 때도 시공이나 인테리어 등 하드웨어적인 것보다는 매력적인 서비스에 마음이 움직인다. 전통적으로 상품은 재화(유형의 제품)와 용역(무형의 서비스)으로 이분화되어 있었지만 오늘날 서비스는 제품을 둘러싼 모든 것, 제품과 연결되고 융합된 것으로서 제품차별의 주요한 방법이 되고 있다. 분석센터에서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분야의 'Software-as-a-Service(SaaS ·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개념을 응용해 모든 가치가 서비스로 재창출되고 있는 흐름을 Everything-as-a-Service, '만물의 서비스화'라는 키워드로 개념화했다. 만물의 서비스화는 전통적 산업에 다양한 서비스가 부가되면서 서비스화(Servitization)하는 것과 신산업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서비스 위주로 재편되는 것,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비스 경제에서는 '시간'과 '감정'이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소비자의 시간을 효율화해 줄 수 있도록, 그리고 수치화되기 어려운 감성적 만족도를 측정해 효과적인 퀄리티 컨트롤을 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폭넓은 시각으로 인간성을 회복하고 생활의 개선을 통해 그간 볼 수 없었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서비스 디자인 개념이 필요하다. 이제 서비스는 덤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제품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무엇이다.
* Free-mium: 무료인 free와 고급·유료인 premium을 혼합한 신조어로 기본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 후 충분한 사용자 기반이 확보되었을 때 제품의 일부 기능이나 콘텐츠를 유료화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형태를 말한다.
* 스트리밍(streaming): 인터넷에서 음성이나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술을 말한다. 10대 사이에선 '스밍'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동영상 파일이나 음원을 다운받지 않고 데이터를 이용해 바로 재생할 수 있어 다운로드하는 데 시간이 들지 않고 다운받을 기기의 용량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음악에 이어 영화 역시 간편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확산중이며 소비자들이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매력'이 자본이 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이 원자화하고 또 그것을 표현하는 매체가 고도로 개인화된 소셜미디어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소비의 기능이 자기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매력있는 상품을 찾게 된 것이다. 기업들 또한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상품들 중 자사의 제품·서비스를 확실하게 어필하기 위해 강력한 매력을 찾고 있다.
매력은 단지 예쁜 것이 아니라 여러 결점이 있음에도 도깨비에 홀린 듯(매력의 매(魅)는 '도깨비 매'자다), 비이성적인 힘에 의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매력은 '단점이 없는 완벽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단점이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끌리게 하는 힘, 매력은 ▲ 자기만의 특출한 장점이 하나라도 있을 때 ▲ 친근하고 귀여울 때 ▲ 반전이 있을 때 ▲능숙한 '밀당(밀고 당김)'이 있을 때 발생한다.
이제 작은 상품 하나도 적극적인 매력 어필을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존재감을 확인하는 시대다. 상품의 과잉공급이 일반화된 현대 사회에서 만성적인 '선택 장애'를 겪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은 가장 강력한 구매 요인이다. 여러 제약 때문에 완벽할 순 없지만 그래도 선택받기를 포기할 수 없는 상품들, 나아가 현대인에게 매력은 생존의 필살기가 되고 있다.
자기주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던 자기만의 의미인 취향과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커밍아웃'한다는 점에서 분석센터는 이런 현상을 '미닝아웃'이라고 명명했다. 미닝아웃이 전통적인 불매운동이나 구매 운동과 차원이 다른 지점은 그 의미가 다양해지고 표현방법도 놀이처럼 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관심사를 해시태그로 붙이고, 축제 같은 집회에 나들이 가듯 참석하며, 메시지를 담은 슬로건 패션을 통해 미닝아웃을 실천한다.
집단 속에서 개인이 튀거나 나서는 것을 유별나게 생각하고 마땅찮게 여기던 과거와 달리 개인의 목소리와 입지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권력과 제도에 대한 믿음은 떨어지는 가운데, 시민·소비자 개개인의 내적 효능감은 높아지고, 소셜미디어를 위시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혼자서도 얼마든지 여론을 모을 수 있고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화된 매체인 소셜미디어에서 신념과 가치관으로 자아를 연출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망은 미닝아웃 트렌드를 키우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극도로 평등화된 사회에서 스스로의 신념을 강하게 확신하는 소비자들이 자기가 믿는 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회 변화가 시작됐다.
랜선이모, 티슈인맥, 반려식물, O2O 인간관계, 뷰니멀족, 버그아웃족, 싱글웨딩, 결혼인턴제, 그리고 졸혼까지… 인간관계가 새로워 지고 있다. 이렇게 새로워지는 가족과 관계의 종류를 긱관계(gig-relationship), 대안 가족(alt-혹은 alternative famil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변화의 주된 배경으로는 관계에도 가성비의 원칙을 적용하려는 개인주의 사회의 가치관을 들 수 있다. 관계를 맺는 데 드는 노력 대비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계산해서 관계를 선택하는 변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관계의 가성비에 따라 사람 대신 반려동물과 교감하기도 하고 동물과의 관계에서 부담을 느끼면 반려식물을 찾기도 한다. 사람이나 동물을 만날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애착을 형성하거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기도 한다. 연애와 결혼을 거부하거나 같은 집에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부부도 관찰된다. 결혼과 동거, 졸혼과 이혼 등 제도의 경계가 무색해지는 가족과 관계의 해체와 재편이 등장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관계를 위해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지만 외로움은 해결하고 싶은 딜레마 속에서 자신만의 최적 관계를 찾아 나선다. 이제 그들에게 관계의 본질은 깊으냐 얕으냐 심도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애착·소통의 필요를 각각 누가 충족시켜줄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되고 있다.
* 긱 이코노미(gig-economy): 긱 이코노미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직, 프리랜서 등을 채용해 일을 맡기는 고용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공유 플랫폼 발달로 에어비앤비, 우버 등의 새로운 형태 기업이 등장하면서 우버 기사와 같은 비숙련, 임시직의 일자리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정규직의 종말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는 한편, 유연한 고용형태를 장점으로 내세우는 긱 이코노미는 고용 없는 기술 발전의 한 현상으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 티슈인맥: 내가 필요할 때만 만나고 소통하는 일회성 인간 관계, 쓰고 버리는 티슈처럼 관계를 지속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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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의 원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이 나로서기를 해야 하는 시대다.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계급 사다리가 붕괴되면서 자신의 낮은 사회적 위치를 비판하는 수저계급론은 위기를 맞이한 우리 사회의 자존감을 상징한다.
소비와 직접 연결되는 주제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자존감은 가치와 명품 소비, 창조적 소비, 윤리적 소비, 개성표현 소비, 보상적 소비와 자기 선물 주기, 복고 소비, 외모관리 소비 등 최근 주목받는 수많은 소비트렌드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핵심열쇠다. 사치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존재의 근원적 소멸 공포로부터 기인하며 창조적 소비는 기성품의 수동적 구매를 넘어 아트슈머(artsumer)로서의 자기 효능감을 고양시킨다. 또한 자존감을 높이려는 소비자들은 우아한 윤리적 소비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이제 자존감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기업과 조직도 내부 고객의 자존감과 자부심을 높임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적 차원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나홀로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관계밀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기밀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나로서기:
* 출처= '트렌드코리아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