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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놀이야, 알 권리야?… 신상 털기

'신상 털기'가 유명인이나 연예인뿐 아니라 개인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개인의 정보는 물론 과거에 했던 말까지 알려지는 세상이다.
관음증이 낳은 과도한 마녀사냥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개인의 '알 권리'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 구성 및 제작= 뉴스큐레이션팀 심지우

    입력 : 2017.02.16 08:13

    2011년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이혼 소식이 알려지면서, 연예인을 향한 '신상 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인척에 대한 온갖 신상과 루머가 쏟아졌다.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 밝혀지기도 전에, 끝없는 공유로 소문은 소문을 낳게 됐다.

    /블룸버그

    최근 신상털기의 화살은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 개인에게까지 향한 모양새다. 연예인의 사건사고에 연루된 사람에 대한 신상 털기부터, '고대 일진녀'나 '연대 락스녀'와 같이 일반인의 과거 일화까지 까발려지는 추세다.

    클릭 몇 번이면 끝, 신상 털리는 사람들

    방송 끝난지 1시간 만에 논란의 주인공으로

    엠넷의 힙합 예능 '고등래퍼'에서 주목받은 고등학생 장용준은 출연 직후 바로 '신상 털기'의 대상이 됐다. 서울 강동 지역대표 선발전에서 매력적인 목소리와 훌륭한 가사 전달력으로 실수 없이 무대를 마친 뒤, 스윙스가 "회사 있어요? 나랑 얘기 좀 해요"라며 "그 친구 진짜 좋아요"라고 치켜세웠다.

    /Mnet 영상 캡처

    그러나 방송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화제가 된 이후 일부 누리꾼들은 '장용준의 과거'라며 인성을 문제삼는 글을 쏟아냈다. 특히 과거 장용준이 SNS를 통해 조건만남 및 흡연을 시도한 등의 내용을 캡처했고, 글은 순식간에 온라인으로 퍼졌다. 방송이 끝난 지 1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인터넷 캡처

    장용준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그의 아버지가 바른정당 소속 장제원 국회의원이라는 점도 문제가 됐다. 장 의원은 '최순실 청문회'에서 아들의 병역 특혜 의혹을 받는 우병우 증인을 신랄하게 비난하며 이름이 더욱 알려진 상황이었다.

    결국 장 의원은 당 대변인과 부산시당위원장직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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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 반대했다가 '탈탈' 털린 고교생

    장용준군처럼 방송에 나오지 않았어도 일반인을 향한 신상 털기는 더 늘어나고 있다. 과거엔 사이버 공간에서 '개똥녀'처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인물이나 유명 연예인이 주로 공격을 받았다면, 요즘 SNS에선 일반인도 '묻지 마 공격'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7차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에서 한 고등학생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가 인터넷에서 공격을 받았다. 당시 이 고등학생은 '휘봉고'라고 밝혔는데, '휘문고 다니는 어린 친박(親朴)'이라며 인터넷에 퍼졌고 휘문고등학교는 해당 학생이 다니고 있지 않다며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김도원 화백

    그러자 이번엔 김군을 두고 "휘문고를 사칭했다" "사실 고등학생도 아니고 24세 무직이다"는 비난 글이 SNS에 퍼졌다. 김군이 탈북자라는 근거 없는 주장도 돌았다. "김군 어머니가 '열혈 박사모'"라는 식으로 김군 가족에 대한 신상털기도 마구잡이로 진행됐다.

    한 의사는 SNS에 "자신이 휘문고 학생이라며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서서 발언했던 자가 실제로는 휘문고가 아닌 휘봉고를 졸업한 24세 성인으로 엄마는 열혈 박사모 회원임이 밝혀진 부분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그러나 김군은 19살로 실제 휘봉고 3학년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탈북자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더보기

    신상 털기 통로 된 SNS

    이같은 신상 털기는 온라인 상에서, 특히 SNS를 통해 생산되고 빠르게 확산된다. 실제 개인 정보의 유포도 문제지만, 잘못된 정보가 유출되어 일상생활을 위협해도 손 쓸 겨를도 없이 빠르게 퍼진다는 것이 더욱 문제다.

    지난 달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아 기각 결정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신상 털기의 표적이 됐다. 조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의 영장을 기각한 뒤 SNS를 중심으로 조 부장판가 '삼성 장학생'이라거나 그의 자녀가 삼성에 입사했다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이 퍼졌다.

    전화번호·가족까지… 30분만에 인터넷서 발가벗겨졌다
    /조선DB

    몇 년 전 배우 박시후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여성에 대해서도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SNS에 빠르게 퍼졌다. 그의 평소 행동, 과거 행적에 대한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정보 수백 건이 등장했다. 사건이 공개된 직후부터 신상 정보와 사진 등이 퍼지며 '마녀 사냥식 신상 털기'에 시달렸다.

    이제는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SNS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털어 게시물로 올리는 '일반인 신상 털이' 계정까지 생겼다. 단속에도 개의치 않는다. 신상 털이 계정에는 '외국인 남성과 어울려 다닌다' '지나치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 한다' '고등학생이 술을 마신다' 등의 이유로 사진과 함께 신상이 노출된 일반인이 수십 명에 달했다. ▶기사 더보기

    "나쁜 사람 알려서 벌 주는 게 뭐 어때서?"

    신상 털기가 정당하다는 생각의 내면엔 '알 권리'가 있다. 알 권리에 따르면 신상 털기는 법의 심판을 받은 성범죄자들의 신상 정보가 공개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과거에 윤리적인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현재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그들의 과거 행적을 알리고, 뉘우치기를 바라는 심정도 내포돼 있다.

    최근 대학가에서 이슈가 된 '연대 락스녀'나 '고대 일진녀'도 맥락을 같이 한다. 공부를 잘 했다는 이유로 과거의 윤리적 잘못들을 덮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연세대 익명 커뮤니티에는 올해 입학하는 여학생이 고등학교 동급생을 실명에 이르게 할 뻔한 사건이 제보됐다. 글은 해당 여학생의 사진과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됐고, 학교에서 처벌받지 않고 무난히 대학 진학도 할 수 있던 것은 A양의 부모가 지역 유력인사였기 때문이라는 배경 설명도 담겼다.

    고려대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명 '고대 일진녀'에 대한 제보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오는 3월 17학번으로 입학하는 여학생이 중학생일 때 샤프로 친구의 귀를 뚫고, 형광펜을 입에 바르게 하는 등 왕따를 주도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SNS로 알려진 신상, 그리고 응징

    얼마 전 술에 취한 남성이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며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던 사건은 팝스타 리처드 막스의 SNS를 통해 알려졌다. 리처드 막스의 페이스북에는 난동을 피운 남성의 얼굴이 고스란히 공개됐다.

    영상을 접한 이후 네티즌은 바로 신상 털기에 돌입해 이름, 나이, 거주지, 직장정보 등을 퍼뜨렸다. 난동을 부린 남성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무역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이 남성은 이날 아버지를 대신해 베트남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남성은 현재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 항공보안법상 기장 등 업무방해, 상해, 재물손괴, 폭행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리처드 막스 페이스북 캡쳐

    2013년에는 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이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기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 승무원을 때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과 SNS 상에는 이른바 '라면 상무'라고 불리는 해당 임원을 향한 신상 털기와 함께 비난이 쏟아졌다.

    해당 대기업 임원이 '포스코 에너지에 재직 중인 왕 상무'라고 주장하는 글과 함께 왕 상무의 사진이 올라왔고, 인터넷에선 "얼굴 보니 부하 직원 꽤 고생시키게 생겼네" 등의 비하 발언이 이어졌다.

    왕 상무는 결국 '기내 갑질' 논란으로 해고됐고, 해고 불복 소송 항소심에서도 졌다.

    女승무원 폭행한 대기업 임원에 비난 쏟아져…'신상털기' 논란

    "과도한 신상 털기는 마녀사냥일 뿐"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신상 털기가 '남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우월감이 인터넷의 파급력과 복합적으로 결부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타인의 사생활을 알고 싶어하는 관음증이 마녀사냥 식의 신상 털기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터넷 군중심리로 인한 과도한 신상 털기는 수차례 있어왔다. 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 논란이 일어났을 때 타블로 본인과 주변인들에 대한 신상 털기가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수 유니와 배우 최진실도 자살하기 직전까지 극심한 네티즌의 공격에 시달렸다. 대부분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처럼 떠돌았다. 사람들은 근거 없는 정보를 모으고 생산하는 것이 마치 자랑인 양 인터넷상에 유포했고, 이를 본 사람들은 글을 쓴 이에 대해 '대단한 정보력'이라며 치켜세우는 댓글을 달았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는다
    /조선DB

    최근에는 유흥주점에서 일했다는 내용과 함께 여성들의 사진과 과거가 유포되기도 하고, 지하철 임신부석에 앉은 남성의 사진과 정보가 퍼져 나가기도 한다. 일반인의 신상을 터는 SNS 계정이 계속해서 생기면서 이젠 누구나 신상털기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몇몇 누리꾼들은 바른 정당 유승민 의원의 딸 유담 씨의 나이, 학교, 프로필, 인스타그램 등을 추적했다. 뿐만 아니라 한 누리꾼은 유담 씨의 재산 현황까지 추적해 한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이를 게재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돌 던지는 관음증' 인터넷 문화… 신상털기, 왜?

    "○○○ 찾습니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공개수배

    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용의자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는 이른바 '사적(私的) 공개수배'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의 '공개수배 전단'을 흉내 내, CCTV나 SNS로 확인한 용의자의 모습과 죄상을 적은 종이를 공개된 장소에 게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집과 가게 앞에서 흡연이나 노상방뇨를 한 사람, 온라인 거래 사이트에서 돈만 챙겨 잠적한 사람들이 주된 표적이다. ▶ 기사 더보기

    가게 앞서 담배 피웠다고 '私的 공개수배'
    /김도원 화백

    지난 3일 한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는 'PC방 먹튀 공개'라는 제목의 공개수배 글이 올라왔다. PC방 업주라는 글쓴이는 요금을 내지 않고 달아난 용의자의 얼굴 사진과 게임 ID를 공개하면서, 회원들에게 "게임에서 (용의자를) 만나면 '경찰서 신고 들어갔다'고 한마디씩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 글에는 하루 만에 "속 시원하다" "범죄자 꼭 잡길 바란다" 등의 응원 댓글 90여 개가 달렸다.

    사적 공개수배를 한 사람이 도리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이 맞다고 해도 얼굴이나 개인정보를 함부로 공개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말했다.

    2차, 3차 피해는 어떻게 책임지나?

    함께 살던 남성을 살해한 안산 시체 훼손 사건 피의자 조성호는 신상털기가 시작된 후 SNS의 글과 사진, 심지어 성인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까지 공개 됐다. 조성호의 전 여자친구와 가족들의 신상털기까지 이어졌다.

    신안 섬마을 집단 성폭행 사건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신상 털기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아닌 다른 교사의 정보가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에 노출돼서 그 교사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실제 사실이 아닌데도 SNS로 퍼진 신상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이다.

    /조선DB

    또한 만약 실제로 어떤 죄를 저질렀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지, 도 넘은 신상털기는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찰청 관계자는 "신상 털기는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허위 사실은 물론이고, 당사자가 피해를 볼 만한 사항이라면 실제 사실이더라도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상 털기의 순수한 목적이라고 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잘못이 있는 사람인데 처벌도 받지 않고 잘 살고 있다면, 분명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신상 털기는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사람의 잘못을 손가락질하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사람의 모든 사생활을 캐내고 관련된 사람들까지 묶어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은 '마녀사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사건과 관계 없는 사생활이나 비밀까지 공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숨기고 싶은 무언가를, 타인이 신상 털기를 통해 침해할 권리가 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 모두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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