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6일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던 2012년 5월 상황과 관련, "그때도 당내 많은 의원이 반대했는데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아서자 반대하던 의원이 전부 다 찬성으로 돌아버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런 이상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상향식 공천에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선진화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인지, 친박(親朴) 진영에서 공격받고 있는 상향식 공천의 당위성을 주장하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여당 출신 국회의장과 친박 의원들이 선진화법을 놓고 충돌하고 있는 배경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선진화법 같은 기형적 입법 뒤에 보스의 내리꽂기 공천과 계파정치가 있다는 지적이다.
2012년 19대 총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위기에 몰린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과반(過半) 의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박 대통령은 당시 정치 혁신의 상징으로 선진화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총선 후 법 통과 직전에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친박 의원들은 남경필 경기지사 등 초·재선 소장파가 이 법안을 추진할 때만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거나 반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찬성 입장을 밝히자마자 대부분 찬성으로 돌아섰다. 결국 표결 때는 박 대통령과 당시 원내대표이던 황우여 의원 외에 유일호 경제부총리, 유정복 인천시장, 현기환 정무수석, 이정현 의원 등 친박 핵심 대부분이 찬성했다. 기권한 최경환, 반대한 윤상현 의원 정도가 예외였다. 표결 결과는 찬성 127, 반대 48, 기권 17로 압도적 통과였다.
그때 반대표를 던진 사람 중에는 김무성 대표와 정의화 국회의장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그 당시 이미 "식물 국회가 될 것" "다수결 원칙 위배"라고 지적했다. 그랬는데도 김 대표는 지난 18일 당을 대표해 "희대의 망국법(亡國法)을 통과시킨 것을 사과한다"고 했다. 정의화 의장은 지금 중재안을 제시하며 어떻게든 타협안을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정작 문제는 박 대통령과 친박 의원들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신년 회견에서 "(국회가) 동물 국회 아니면 식물 국회가 될 수밖에 없는 수준밖에 안 되는가 이거죠"라고 마치 남의 말 하듯 했다. 친박 의원들은 직권 상정을 거부하는 정의화 의장을 향해 다른 당에 입당하려는 게 아니냐는 식의 인격 모독적 발언까지 했다. 법을 만들 때의 취지와 실제 벌어지는 현실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 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반대했던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지금 상황은 비정상이다.
선진화법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개정해서 20대 국회로 넘겨야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이 박 대통령과 친박 의원들의 자기반성과 사과다. 그래야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고 야당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