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비리를 수사해 온 검찰이 11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을 뇌물공여·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 수사에 착수한 지 8개월 만이다. 검찰은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과 거래 업체들과의 비리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드러난 건 구조적 부패라기보다 개인 비리에 가깝다. 수사를 이렇게 오래 끌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 전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2009년 포스코 신제강 공장 건설 중단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이상득 전 의원의 측근이 운영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12억원 상당 이익을 제공하고, 2010년 부실 업체인 성진지오텍을 인수해 회사에 1592억원 손해를 끼친 혐의다. 검찰은 여기에 거래 업체에서 골프 접대와 고급 와인을 받은 혐의까지 포함했다. 소소한 비리까지 탈탈 털어 범죄 혐의로 집어넣은 것이다. 검찰은 애초 이 수사에 대해 "국민 기업인 포스코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으나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내민 셈이다.

이런 결과는 예상됐던 것이기도 하다. 기업 비리 수사는 내사(內査)를 통해 부인하기 힘든 증거가 확보되면 수사에 착수해 단기간에 끝내야 한다. 그래야 비리를 가리면서도 경영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포스코 내부에서는 애초 검찰이 제대로 맥(脈)을 짚으면 적지 않은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포스코 수사는 기업 수사의 정석(定石)에서 한참 벗어났다. 지난 3월 국무총리의 '부패와 전쟁' 선포 직후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해 무분별하고 광범위한 압수 수색을 일삼았다. 사실상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로 시작해 미세 먼지 털듯 수사를 했으니 예고된 결말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무리한 확장 경영으로 회사를 부실하게 만든 정 전 회장의 경영상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가 재임한 5년간 포스코 영업이익은 4조원 줄었고 부채는 20조원 증가했다. 2009년 7조원이던 현금성 자산은 계열사를 30여 개나 늘리는 무분별한 기업 인수 여파로 2012년 말 2조원 수준으로 급락했다. 세계적 우량 기업이 이런 부실에다 철강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평범한 회사로 주저앉은 것이다.

이제 포스코 주주들과 이사회는 회사를 부실하게 만든 전직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여지가 없는지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 전 경영진의 경영 실패를 냉정히 따져보지 않으면 또다시 '먹튀' 부실 경영자가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주들과 현 경영진의 몫이지 정권이 검찰을 앞세워 닦달할 일은 아니다. 지금 경영진이나 주주가 전 경영진의 비리를 고발하면 그때 검찰이 나서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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