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인 25일에도 국정 역사 교과서 여야 공방은 계속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서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이번 주에 시작된다. 27일엔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대통령의 시정(施政)연설이 예정돼 있고 그다음 날부터 예산결산특위가 시작된다. 벌써 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충돌 속에 내년도 예산안이나 다른 민생 법안들에 대한 처리가 어려워질 것이란 걱정이 나오고 있다. 한국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상이다.
교과서 문제는 그대로 토론하면서 예산과 법안은 별개로 심의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야당에 달렸다. 야당이 19대 국회 내내 되풀이했던 대로 '국정교과서 철회 안 하면 예산안, 노동 개혁 입법안, 한·중 FTA 비준안 처리를 막겠다'고 나오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뜻이다. 야당이 이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면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국회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적어도 아직까지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이 과거와는 다른 것 같아 주목되고 있다. 문 대표는 "국정교과서를 막기 위해 국회 일정 연계나 예산 심의 연계는 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당내에서도 이번만은 그렇게 하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이 절대다수라고 한다.
야당은 최근 몇 년 동안 전혀 성격이 다른 별개의 문제를 엮어서 '이것 안 해주면 저것 막겠다'는 전술에 매달려 왔다.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에 세월호특위 조사관 임명 문제를 연계하다가 나중엔 여기에 다시 국회법 개정안을 엮는 터무니없는 일까지 벌였다. 아무리 비판이 커져도 듣지 않았다. 지금 야당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국민들의 시선이 얼마나 싸늘한지를 뒤늦게나마 알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정당이 지지를 얻기 위해선 당에 대한 신뢰가 어떤 경우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그 기초가 무너져 있다.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 혼선처럼 정부·여당의 실책이 이어지는데도 야당 지지율이 여전히 낮은 것은 결국 그 때문이다. 야당의 연계 전술이 신뢰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정을 믿고 맡길 만하다'는 믿음이 자라날 수가 없었다.
국정교과서가 야당 주장대로 잘못된 것이라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검정 교과서 회귀'를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판단을 받으면 된다. 그러지 않고 국회를 마비시켜 뜻을 이루겠다고 나오면 국정교과서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까지 야당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연계 투쟁의 유혹에서 벗어나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는 이번 약속만은 반드시 지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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