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은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이 선임병들의 가혹 행위로 사망한 지난 4월 7일 "음식을 먹다가 선임병에게 얻어맞아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졌다"며 단순 폭행 사고로 숨진 것처럼 짤막하게 발표했다. 가혹 행위의 실상은 민간단체인 군인권센터가 지난달 31일 윤 일병 사건 수사 기록을 공개하고서야 낱낱이 드러났다.

윤 일병은 부대 전입 후 3월 3일부터 구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선임병들은 윤 일병이 '대답이 느리고 인상을 쓴다'는 이유로 대걸레 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허벅지를 때렸고 밤새 경례 동작을 시키기도 했다. 윤 일병이 숨지기 하루 전인 4월 6일엔 윤 일병의 얼굴과 허벅지에 생긴 멍을 지우겠다며 안티푸라민을 바르고 심지어 성기에도 발랐다. 윤 일병이 연이은 폭행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침을 흘리고 오줌을 싸며 쓰러졌지만 오히려 꾀병을 부린다며 배와 가슴을 때렸다. 선임병들은 윤 일병이 숨지자 "음식을 먹고 TV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입을 맞췄고 윤 일병의 수첩 2권을 찢어 가혹 행위 증거를 없애려 했다.

군 당국은 수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파악해 5월 2일 선임병 5명을 상해치사죄로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단순 폭행으로 숨졌다는 애초 발표를 바로잡는 수사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 선임병들이 자기들이 뱉은 가래침과 윤 일병이 구타를 당해 토해낸 음식을 핥아 먹게 했다는 비인간적 행위도 밝히지 않았다. 윤 일병 성기에 안티푸라민을 발랐다는 사실도 군 인권센터가 공개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시인했다. 군 당국은 수사 과정에서 윤 일병 유족이 현장 검증에 참여시켜 달라고 했던 요구마저 거부했다. 그래 놓고는 이제 와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2일 각군 참모총장 회의를 소집해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법석을 떨고 있다.

군 사망 사고 관련 민원 조사 결과를 보면 유족들은 순직·보상 요구(40.4%) 다음으로 정확한 진상 규명(33.0%)을 요구하고 있다. 군이 한사코 진실을 감추려고만 드니 무슨 사고가 터졌을 때 군의 진상 조사 발표를 믿지 않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군이 정말 가혹 행위를 막으려면 그 실태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열린 자세를 갖고 가혹 행위가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과 대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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