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생 790명 가운데 95명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합당한 처단(處斷)을 받도록 힘써 달라'는 의견서를 4일 대검찰청에 냈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국정원장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헌정 문란 범죄이고, 지방경찰청장이 범죄 사실을 발견하고서도 증거를 은폐하는 것은 사법경찰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고 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느냐를 놓고 검찰과 법무부에서 논란이 많았지만 검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현재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논란은 그치지 않아 야당과 진보 단체들은 국정원이 관권(官權)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반면, 여당과 보수 단체들은 국정원의 종북 세력 단속을 위한 정당한 대북(對北) 활동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결국 국회는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45일 동안 국정원을 상대로 국정조사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 사법연수원생들이 끼어들어 특정 정치 세력 입장에 서는 내용의 집단 의견서를 냈다. 사법연수원생들은 국가공무원법 적용을 받는 별정직 공무원 신분이다. 국가공무원법은 모든 공무원에 대해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정치 운동을 벌인다든지 공무(公務)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를 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사법연수원생들이 시민 단체처럼 집단 의견서를 낸 것은 공무원으로서 법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청장의 불법 여부는 앞으로 재판에서 가려야 할 문제다. 그런데도 사법연수원생들은 "헌정 문란 범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는 단정적 표현을 썼다. 예비 법조인인 연수원생들이 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헌법 규정을 모를 리 없다. 이들은 앞으로 판·검사가 돼서도 유죄 또는 무죄라는 결론을 내려 놓고서 재판은 그저 요식행위로 하겠다는 것인가.

사법연수원생들은 법률 전문가가 되는 데 필요한 실무 지식과 법조인으로서 갖춰야 할 윤리(倫理)를 배우는 과정에 있다. 법조인으로서 법률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물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는 균형 감각을 기르는 것이다. 의견서를 낸 연수원생들은 그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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