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월 지방자치선거부터 시장·군수·구청장과 시·군·구의회 의원을 뽑는 기초자치선거에서 정당 공천이 폐지될 게 확실해졌다. 대선 때 이를 공약했던 여야 모두 9월 정기국회에서 이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여야 정당의 기초선거 공천권은 중앙당 실력자와 국회의원들이 휘둘러왔다. 지방선거 때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돈을 주고 공천장을 사는 비리가 되풀이돼 온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상 돈으로 '당선증'을 산 지방단체장·의원들이 인·허가권을 남용해 부패를 저지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기초단체장·의원들이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비서, 선거운동원 노릇을 하면서 중앙 정치의 대립이 지방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기초단체장과 의회 다수파의 소속 당이 다르면 극심한 정쟁이 빚어졌다. 반대로 영·호남처럼 단체장과 의회 다수당이 같은 당이면 단체장과 의원들이 비리의 한통속으로 엮이곤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당 공천제가 돈과 지역 기반은 없어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지역 공직을 맡을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 기능이 퇴색되면 상대적으로 지역 토호(土豪)들이 기초단체장이나 의원이 돼 지역을 자신들의 '소(小)왕국'으로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정당 소속 없는 후보들이 학연·지연·혈연으로 얽힌 사조직들을 동원하고 돈을 풀어 탈법·불법 선거운동을 할 여지 또한 많아진다. 정당 공천이 없어지면 후보들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유권자들이 대거 기권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정당 공천과 비례대표제는 군소정당·여성·청년·장애인 같은 정치적 소수자들의 정치 참여 기회를 늘리는 역할도 했다. 2002년 2.2%였던 여성 기초의원 숫자가 2006년 기초선거 정당 공천이 허용된 뒤 늘어나기 시작해 2010년 선거에선 20%를 넘어섰다. 비례대표제를 계속 남겨 정원(定員)의 일정 부분을 여성에게 의무 할당하는 제도, 여성 전용 선거구제나 여성 전용 비례대표 명부제 도입 등을 검토해 볼 만하다. 일부에선 청년·장애인 후보에게 유효 득표수의 일정 비율을 가산해 주는 방안도 내놓고 있다.

기초선거에서만 정당 공천을 금지하는 건 헌법상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해 위헌(違憲)이라는 지적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2003년 "기초의원 후보자의 정당 표방을 금지한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정당 공천은 막되 후보들의 자발적인 지지 정당 표방은 허용하는 식으로 위헌 시비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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