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본사의 30대 직원이 50대 대리점 점주(店主)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소리를 섞어가며 물건을 더 받으라고 강요하는 통화 녹음 파일이 지난 주말 인터넷에 공개됐다. 회사 측은 녹음 파일이 공개된 다음 날 그 직원을 해고하고,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 성명을 발표했지만 분노한 소비자들 사이에 이 회사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녹음 파일을 공개한 대리점주들은 대리점에서 본사에 올리는 전산(電算) 주문서를 본사 직원들이 조작해 발주하지도 않은 물품을 강제로 떠맡겼다며 본사 관계자 10여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대리점주들은 본사 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대리점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때마다 '명절 떡값' '본사 직원 퇴직 전별금' 명목으로 현금을 뜯어갔다고도 했다. 검찰은 이 회사 사무실에서 회계장부, 이메일, 내부보고서를 압수해 조사 중이다.
점주들은 대리점이 100박스를 주문하면 본사가 200박스를 팔라고 강제하고 심지어 유통 기한이 다 된 상품들까지 떠넘겼다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분유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한 해 1조30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국내 유가공 업계 1위인 이 회사는 점주들을 착취해 업계 1위에 올라섰다는 말이 된다. 본사 영업사원들은 회사로부터 할당받은 몫을 채우지 않으면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나이 많은 점주들을 향해 반말과 상소리를 퍼부으며 물품을 강제로 떠안겼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대리점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가맹점, 하도급 업체들도 권력을 휘두르는 대기업 본사와 갑(甲)-을(乙) 사슬에 묶여 힘겹게 숨을 쉬고 있다. 대기업이 대리점 수탈을 계속하면 대리점들은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고 대리점들이 쓰러지면 결국 대기업 본사도 존립을 위협받게 된다. 선진국에서도 대기업 본사들이 대리점에 판매 목표량을 설정하지만 우리처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회사가 내건 목표를 달성하는 점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정부 당국이 지금 있는 공정거래법, 가맹사업법, 하도급업법 같은 법만 제대로 시행해도 대리점들을 괴롭히는 대기업 횡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대기업들의 횡포에 대해 기껏 시정 권고나 내리면서 어물쩍 넘어가니 본사가 대리점의 목을 조이는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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