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국가 전략 문제의 태두(泰斗) 브레진스키가 가까운 미래에 중국과 인도가 부상하고 미국이 쇠퇴하면서 '지정학적 위험'에 빠질 대표적인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그가 최신 저서에서 세계 패권 국가의 질서 변화에 따른 영향을 가장 먼저, 그리고 직접적으로 받을 나라로 한국보다 앞서 든 나라는 구(舊) 소련에 속해 있던 인구 460만명의 소국(小國) 조지아와 대만뿐이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쇠퇴는 한국이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하도록 할 것"이라면서 한국 앞에 놓인 길로 '중국의 지역적 패권을 받아들여 중국에 더 기대는 방안'과 '역사적 반감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관계를 더 강화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지원이 없을 경우 일본이 중국에 맞설 수 있는가는 회의적"이라면서 "한국과 일본 등은 미국의 쇠퇴로 미국이 제공해온 핵우산(雨傘)에 대한 신뢰 위기가 닥쳐올 경우 (미국이 아닌) 새로운 핵우산을 찾거나 스스로 핵무장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이 한반도 통일 문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한국은 '중국이 지원하는 통일'과 '한·미 동맹 축소'를 주고받기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브레진스키는 대한민국의 생존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국제 환경의 변화 시기를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미국을 추월할 향후 20년 전후로 내다봤다. 세계의 패권 국가 미국이 태평양 건너편에서 자기들에게 맞설 수 있는 경쟁적 패권 국가 중국이 부상(浮上)하는 영향을 20년 후에 받게 된다면 중국과 육지와 바다로 접속(接續)돼 있는 한국은 그보다 훨씬 이른 앞으로 5년 10년 후부터 거대(巨大) 중국의 압박감을 정치·경제·군사 면에서 절감하게 되리라는 말이다.
브레진스키가 이번에 내보인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세 전망은 노무현 정권이 전시작전지휘권을 한국에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미국이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응했을 때 이미 예견(豫見)됐던 일이다. 한국의 미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들과 차기 집권을 경쟁하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브레진스키의 냉혹한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그는 한국이 붙들고 주저앉히려 해도 미국이 한반도에서 발을 빼려 하는 시대가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에 기댈 것이냐 일본과 손잡을 것이냐'고 묻고 있다. 중국에 기댄다는 말은 중국의 패권적 국제 질서 속에서 부속품처럼 굴종(屈從)하고 연명(延命)하면서 중국의 압도적 영향 아래 살아간다는 뜻이다. 일본과 손잡을 것이냐의 의미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與)든 야(野)든, 좌(左)든 우(右)든 한국 정치 세력은 이 상황에서 5000만 국민을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를 대답해야 한다.
한국 정치 세력들은 브레진스키가 한국이 통일 과정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과 '한·미 동맹의 축소'와 '중국의 통일 지원'을 맞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한 지적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도 되새겨 봐야 한다.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과 미국은 함께 피를 흘린 혈맹(血盟)임을 강조해왔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한국이 현재와 미래에 국익(國益)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주시(注視)하고 그에 따른 대응책을 숙고(熟考)해왔다. 미국 조야(朝野)가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고 결론지은 한국의 과거 집권당 민주당이 한·미 FTA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폐기를 공식 선언하는 사태 앞에서 자신들이 한국에 제공해온 안보적 지원의 시효(時效)를 따져 본다고 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브레진스키 마지막 질문에도 한국 정치 세력은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핵우산을 제공할 미국이 아닌 다른 강대국을 찾을 것이냐, 아니면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냐다. 이 문제 역시 한국의 안보적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 '동맹의 역사'에는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이웃 국가에 흡수되거나 끌려다니지 않으려고 그 강대국의 영향력을 상쇄해줄 다른 동맹 상대를 찾으려는 중간(中間) 국가들의 고심(苦心)이 배어있다. 지난 60년간 미국이 그 역할을 해온 한국에도 결정적 국면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 정치 세력들은 나꼼수처럼 시건방지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나라와 5000만 국민이 위태롭다. 집권하겠다는 세력은 다가오는 국가 생존의 결정적 국면에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의 활로(活路)를 제시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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