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남 법무부장관은 5일 검찰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수사가 엉터리였다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검찰에서 조사할 것은 다 했고 더 이상 기소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행정관이 범죄에나 사용될 법한 대포폰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에게 제공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 민간인 불법 사찰 배후에 청와대가 연루된 의혹이 커지고 있는데도 재수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청원경찰친목협의회의 입법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북부지검은 이날 정치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로비 의혹을 받는 여·야 국회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과 회계담당자 자택 등 50여곳을 한꺼번에 압수수색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압수수색을 미적거려 증거 인멸의 기회를 주고, 대포폰 같은 증거가 나와도 어물어물 넘긴 불법 사찰 사건 수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청와대 행정관이 대포폰을 개설한 시점은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하기 하루 전인 지난 7월 6일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은 대포폰을 다음날 하루만 쓴 뒤 돌려줬고 청와대 행정관은 한 달쯤 뒤 대포폰 사용을 끊었다고 한다. 청와대 행정관이 하드디스크 파기를 눈앞에 두고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는 데 사용하는 대포폰을 왜 개설했는지, 그리고 하드디스크 파기가 끝나자 왜 더 이상 대포폰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 행정관은 불법 사찰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온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직속 부하였다. 대포폰을 만들어준 과정에 이영호씨가 관여했는지는 이번 사건의 배후를 캘 수 있는 핵심 열쇠 중 하나다.

그럼에도 검찰은 "잘 아는 사이인 이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이 대포폰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을 뿐 어디에 썼는지는 몰랐다"는 행정관의 말만 듣고 수사를 끝냈다. 검찰은 이 행정관이 참고인 신분임을 내세워 검찰청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자 검찰청사 밖에서 조사했다. 일반인이 이렇게 나왔다면 보통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이 행정관의 말만 믿지 않고 그가 청와대에서 사용하던 컴퓨터의 기록도 조사해보았더라면 수사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검찰은 청와대가 불법 사찰에 개입한 듯한 의심을 사게 하는 중요한 수사 결과를 감추기까지 했다. 검찰은 기소 요건과는 관계없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사건의 핵심과 관련된 수사 내용을 감추는 바람에 수사 결과 전체가 불신받게 된 것이다. 국민은 이영호 전 비서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사설(私設)조직처럼 활용한 것은 아닌지, 그의 배후에 누가 있어서 행정관이 대포폰까지 만들어 증거인멸을 도왔고 검찰은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했는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검이 나서서라도 권력 핵심 인사들의 권력 남용 전말을 파헤쳐야 한다.


[오늘의 사설]

[사설] 한·미 FTA, '졸속·일방적 양보' 말 나오지 않게 하라 
[사설] 회사·주주 이익 빼내가는 대기업 대주주 反則 막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