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로텐더홀 불법점거사건으로 기소된 민노당 당직자들에 대한 재판을 맡은 판사가 기소되지 않은 사람들과의 형평에 문제가 있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 검찰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 5단독 마은혁(47) 판사는 지난 5일 이 같은 혐의로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민노당 당직자 12명에 대해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들 12명은 여당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직권상정 움직임 등에 반발해 작년 12월 30일부터 지난 1월 5일 새벽까지 로텐더홀을 점거하다가, 오전 3시 15분쯤 국회 경위들에게 현장에서 체포돼 경찰에 넘겨졌다.
공소(公訴)기각이란 검찰이 기소를 잘못했다는 뜻으로, 통상 검찰의 기소내용에 대한 실체적 심리를 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것을 뜻한다.
마 판사는 판결문에서 "민주당 당직자들도 국회의장의 퇴거 명령에 불응했는데, 민노당 당직자만을 기소한 것은 자의적인 차별"이라며 "검사가 소추 재량권을 현저하게 일탈해서 공소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 판사는 이어 "기소된 집단과 안된 집단은 민노당과 민주당의 정당구별과 정확히 일치하고, 구분이 소속정당이 어디인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므로 헌법 11조 1항이 금지한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은 "오히려 마 판사가 사실관계도 살피지 않았고 법적용도 자의적으로 했다"면서 "법조인이라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민주당 당직자들은 1월 5일 오전 1시쯤 자진해산했다. 오전 3시15분까지 남아 유일하게 현장에서 검거된 민주당 최문순 의원의 보좌진은 체포돼 수사받았지만,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무혐의처리됐다. 또 국회 내의 질서유지는 국회 경위들이 1차적으로 맡는 만큼 이들이 연행해 경찰에 넘긴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법적으로 당연하다는 것이다.
마 판사의 판결은 법원 내부에서도 의문을 낳고 있다. 서울남부지법의 다른 재판부는 지난 7월 이들 12명과 동일한 혐의로 기소된 민노당 당직자 박모씨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같은 사안인데 판사에 따라 180도 다른 판단이 나온 것이다.
하급심 판단의 준거가 되는 대법원 판례와도 배치된다. 대법원은 1990년 문규현 신부 방북사건 등에서 '검찰이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을 배척한 이래, "검찰이 공동피의자 가운데 일부만 기소했더라도 기소된 사람의 평등권을 침해했거나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중견 판사는 이에 대해 "검찰이 항소한다면 100% 뒤집힐 판결"이라며 너무 무리한 판결"이라고 했다. 고법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아무리 독립적으로 판결을 한다고 해도 사법의 신뢰성과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법원 내에선 이번 판결이 노동사범들에 '온정적' 입장을 보여 온 마 판사의 개인적 성향과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법원 내 이른바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 연구회의 멤버인 마 판사는 지난 1월 공무원의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한 혐의로 기소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손영태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또 지난해에는 도로 점거 시위를 벌인 코스콤 노조원 15명에 대해 "노조를 재정적으로 파탄시킨다면 양극화 문제 등에 관한 사회적 토론을 중단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벌금형 선고를 유예했다. 2007년엔 "대법원이 복직 소송 선고를 늦게 해 손해를 입었다"는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사건 재판을 진행하면서, 대법원에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한 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