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새로운 영웅이 생겼다. 그녀의 이름은 미카 브레진스키다(유튜브 댓글).” “그녀는 ‘진정한’ 저널리스트로서 모범을 보였다(BBC게시판).”
지난 주 미국 사회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 바로 미국 케이블 뉴스채널 MSNBC의 앵커인 폴란드계 미국인 미카 브레진스키(Brzezinski·40)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최근 MSNBC 아침뉴스 ‘모닝 조(Morning Joe)’에서의 돌출행동 이후, 인터넷 최다검색 이름이자 1분에 한 통 꼴로 격려전화와 팬레터를 받는 스타가 됐다. 대단한 뉴스를 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시시껄렁한’ 뉴스를 ‘안’ 전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절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딸이다. 1990년부터 CBS와 MSNBC 등에서 기자 겸 앵커로 일해 왔지만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9·11 테러 당시 현장 보도를 한 정도 외에는 특별한 이력도 없다. ‘모닝 조’에서도 공화당 하원의원 출신 공동 앵커인 조 스카보로를 보조하는 역할을 주로 해 왔다.
그러나 28일 패리스 힐튼 출감 소식을 전하기를 단호히 거부할 때, 그녀에게서 ‘무명 앵커’의 소심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소식이 톱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사과 드립니다. 제가 고른 게 아니에요.” 미카는 화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전 패리스 힐튼 얘기가 첫 소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특히 오늘 같은 날에는요.”
그 날은 공화당 원로 격인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을 비판한 이례적인 날이었다. 그러나 이는 음주운전으로 구속됐던 힐튼가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 출옥했다는 기사 뒤로 밀려나 있었다.
미카가 패리스 힐튼 기사 읽기를 거부한 것은 아침 6시 뉴스 때부터였다. 이어진 내부 회의에서도 이의를 제기했지만, 담당 PD는 7시 뉴스에 이어 8시 뉴스에서도 그 기사를 첫 순서로 올렸고 결국 미카는 폭발했다.
“프로듀서 앤디 존스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실명을 거론한 그녀는 게스트로 출연한 기자에게 라이터를 빼앗아 기사가 인쇄된 종이에 불을 붙이려 했다. 그가 제지하자 미카는 종이를 구겨 버렸고, 또 다른 종이는 뒤에 있던 종이 분쇄기에 넣고 ‘갈아’ 버렸다. 뉴스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흥미진진한 드라마였다.
스스로 불이익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벌인 미카의 이날 행동은 결과적으로 대대적인 호응을 불러 왔다. 그날 방송분은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서 200만 번이 넘게 시청됐고, 인터넷에는 찬양의 글이 줄을 이었다. 그녀에게 점심을 사고 싶다고 나선 전 CBS 앵커 댄 래더를 비롯해 상당수 언론인들도 지지를 표했다.
특히 이 사건은 미 언론이 만들어낸 ‘패리스 힐튼 신화’를 깨는 데 언론인이 손수 나섰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현대판 공주’인 힐튼은 ‘이유 없이 유명한(famous for nothing)’, 혹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famous for being famous)’ 대표적인 연예인이었다. 특별한 업적이나 사회적 기여가 없음에도 미 언론은 시청률을 위해 힐튼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했고, 결과적으로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미카의 ‘영웅적 항거’에 대해 미 언론이 대체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원죄의식’ 때문이다. 한 미국인은 BBC 게시판에 “종일 뉴스를 봐도 우리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은 알 길이 없다”고 꼬집었다.
미카는 방송 이후 영국 옵저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 언론이 연예인 가십에 파묻혀 진지한 뉴스를 충분히 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이 사건이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자기 행동에 “전혀 후회 없다”며 “상사들이 좋게 반응해 줘서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카의 항거에도 불구하고 패리스 힐튼 출옥 관련 뉴스는 여전히 주말 케이블채널, 연예잡지 및 타블로이드 신문을 도배했다. CNN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는 출옥하자마자 첫 생방송 인터뷰를 선점했고, 평소의 3배인 320만명이 시청하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