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5.04.26 19:38
로마 시내 ‘성모 대성전’에 영면
“고마워요” 시민들 눈물의 배웅
빈자·아이들이 장지서 교황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을 운구한 차량은 그가 평소에 행사 때 타던 흰색 ‘포프 모빌(Pope mobile)’이었다. 뚜껑 없이 일어서서 타는 무개차(無蓋車)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려 한 것이다. 교황의 마지막 가는 길을 수만 명의 로마 시민이 나와 눈물로 배웅했다. 곳곳에서 박수와 함께 “고마워요 교황(Grazie, Papa!)”이라는 인사가 쏟아졌다.
교황의 관을 실은 차량은 장례 미사가 끝난 직후인 오후 12시 30분쯤 바티칸을 떠나 로마 시내를 가로지르는 역사적 운구 행렬에 올랐다. 교황의 관이 로마 시내를 지나 운구되는 것은 1903년 교황 레오 13세가 역시 로마 내에 위치한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안장된 이후 122년 만이다.
운구 차량은 신자들이 교황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천천히 이동했다. 행렬은 단출했다. 앞으로 2대, 뒤로 2대의 의전 차량이 따랐고, 로마 경찰의 오토바이들이 앞뒤를 호위했다. 그 뒤를 케빈 페럴 교황청 궁무처장 등 추기경 10여 명과 교황의 가족·친지들이 탑승한 차량들이 따라갔다. TV 중계 차량들도 그 뒤를 쫓았다.
운구차는 교황의 거처였던 산타 마르타의 집 앞을 지나 바티칸 성문을 빠져나갔고, 로마 시내로 이어지는 ‘폰테 프린치페’를 건넜다. 곧이어 로마를 대표하는 명소인 베네치아 광장과 포로 로마노 유적, 콜로세움을 지나 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 대성전)을 향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중세 시대 교황들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즉위식 후 로마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교황좌를 인수하러 갈 때 이동하던 ‘비아 파팔리스(교황의 길)’과 같은 경로”라고 전했다.
그의 마지막 길을 헬리콥터와 무인기(드론)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운구 행렬을 마중하려 수만 명의 로마 시민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이가 교황의 사진을 들고 나왔고, 곳곳에서 흰색과 노란색의 바티칸 시국 깃발과 3색 이탈리아 깃발,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 국기가 휘날렸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이탈리아 전국에서 모여든 수천 명의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25분 만에 성모 대성전에 도착한 교황의 관을 가장 처음 맞은 것은 로마의 가난한 이들과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교황이 생전에 좋아했던 성녀 테레사의 꽃인 흰 장미를 바쳤다.
교황의 관은 구약 성서의 시편을 노래하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의 묘는 그의 유언대로 성모 성화 ‘로마인들의 구원’이 걸려있는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에 마련됐다. 비석엔 ‘프란치스쿠스(Franciscus)’라는 라틴어 이름과 십자가 모양만 새겨졌다.
이탈리아 매체들은 “이 비석은 고급 대리석이 아닌, 리구리아에서 캐낸 ‘민중의 돌’ 슬레이트(건축 자재로 쓰이는 점판암)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리구리아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해안 지방으로, 교황 증조부의 고향이다.
마지막 하관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탈리아 매체들은 “다시 한번 성수가 뿌려지고, 매장이 이뤄졌다. 대성당 공증인이 매장 사실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를 작성해 참석자들 앞에서 낭독하고, 추기경들과 전례 담당 고위 성직자들이 서명하면서 의식은 끝을 맺었다”라고 전했다.
교황청은 이날부터 9일간의 공식 추모 기간(‘노벤디알리’)을 선포하며 전 세계 가톨릭 신자와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이 기간 동안 매일 추모 기도회가 이어진다. 교황의 묘는 27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