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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정보
조선일보 A25면
출처
조선일보
ID
HX5EXC4WLFEQLMLGX45BKQ7Z6Q

그 많던 코리안은 어디로 갔을까… 여자 골프 세계 10위 이내 전무

민학수 기자
입력 2025.04.22 09:26
'박준석 사진전'을 열고 있는 박준석씨는 "2019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태극기를 활짝 편 고진영의 눈가에 맺힌 이슬을 보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KLPGA 박준석 사진작가

한국 여자 골프가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시절, 미국 현지 방송에서 선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이번 주에도 ‘또 다른 한국 선수(Another South Korean)’가 우승을 차지했다”고 언급하곤 했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 절반 이상을 한국 선수가 휩쓸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두세 대회 걸러 한국 선수가 차지하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그런데 22일(한국 시각) 발표된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한국 선수가 상위 10위 안에 한 명도 들지 못했다. 지난주 9위였던 유해란이 3계단 밀려 12위로 내려가면서 한국 선수 ‘톱 10 실종’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고진영 11위, 김효주 13위, 양희영 16위였다.
그래픽=양진경

세계 1위는 넬리 코르다(미국)이며 2~10위는 지노 티띠꾼(태국), 리디아 고(뉴질랜드), 릴리아 부(미국), 해나 그린(호주), 인뤄닝(중국), 후루에 아야카(일본), 로런 코글린(미국), 에인절 인(미국), 찰리 헐(잉글랜드) 순이다. 미국이 4명으로 가장 많고 태국, 뉴질랜드, 호주, 중국, 일본, 잉글랜드 1명씩이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이 도입된 2006년 2월 이후 한국 선수가 10위 이내에 한 명도 없었던 건 2006년 6월 2주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한희원이 11위에 올랐다. 이후로는 매주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한국 선수가 10위 이내에 이름을 올린 건 물론, 세계 1위 선수도 가장 많은 5명을 배출했다. 2010년 신지애를 시작으로 2013년 박인비, 2017년 유소연과 박성현, 2019년 고진영 등 5명이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다음으로는 미국이 세계 1위를 4명 배출했다. 크리스티 커, 스테이시 루이스, 코르다, 부 등이다.
그 많던 한국 선수는 어디로 갔을까. 예고된 몰락이라는 평이다. 골프가 2016년 리우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복귀하고, US여자오픈을 비롯한 메이저 대회들이 상금을 대폭 늘리자 전 세계적으로 여자 골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골프를 취미로 접근하던 미국과 유럽 선수들이 LPGA 투어를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 한국 여자 골프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한 일본과 태국이 여자 골프를 적극 육성하면서 급성장했다. 이제 이들 훈련량은 한국 선수와 다를 바 없다.
반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인기가 높아진 한국은 개척 정신을 잊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협회는 선수들 해외 도전을 어렵게 하는 폐쇄적 정책을 펴고 선수들도 상대적으로 편한 국내 대회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 투어를 고루 경험한 신지애는 “무엇보다 세계 무대 도전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US여자오픈에 한국 선수 40여 명이 나갔다. 현지 언론에서 US 코리아 오픈이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스무 명이 될까 말까 하다”고 했다.
김재열 SBS골프 해설위원은 “JLPGA 투어는 10년에 걸쳐 선수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엄격한 코스 세팅을 하고 있다”며 “일본 투어에서 뛰다가 LPGA 투어에 진출해도 바로 우승하는 선수들이 나올 정도로 실력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LPGA 투어 신인상 부문 2위를 차지한 임진희는 “일본 선수들은 좀처럼 보기를 안 할 정도로 위기 관리 능력이 좋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직 잠재력은 남아 있다. 이날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00위 내 선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여전히 한국이었다. 한국은 28명, 미국은 17명이었다. 올해 미 LPGA 투어에 데뷔한 윤이나는 올해 초 29위에서 21위로 도약했다. 3주 연속 2계단씩 순위가 상승했다. KLPGA 투어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통산 3승을 달성한 방신실은 지난주 74위에서 10계단 상승한 64위. 방신실은 “세계 랭킹으로 US여자오픈에 출전해 우승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지는 등 젊은 선수들 생각도 바뀌고 있다.
KLPGA 투어는 올해부터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성적을 국내 대상 포인트에 반영하기로 하는 등 ‘국제화’ 방침을 밝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도 공동 주관과 국내 선수들 출전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는 LPGA 투어 중계권을 지닌 JTBC골프와 KLPGA 투어 중계권을 지닌 SBS골프 간 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