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5.04.09 11:07
3월 초 미국이 우크라에 군사 정보 제공 중단한 틈 타서
쿠르스크 주에서 800명 러 특수부대원, 이틀 간 15km 가스관 타고 이동
가스 빼고 산소 주입했지만, 많은 병사 심각한 폐 손상 입어
러시아는 “조국 구한 영웅들” 칭송 vs. 우크라 “100여 명 살아 나왔지만, 곧 섬멸돼”
러시아 특수부대원 800여 명은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게 러시아군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 제공을 중단한 지난달 초 1주일 동안 쿠르스크 주에서 14.5㎞의 가스관을 통해 우크라이나군 진지 뒤로 기습 공격하는 작전을 전개했다.
당시는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에 러시아군에 대한 정보 제공을 중단한 시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J D 밴스 부통령이 2월 28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푸틴의 평화협상 의지, 우크라이나의 미국에 대한 감사 미흡 등의 소재를 놓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공개 설전을 벌인 뒤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3월 5일부터 11일까지 러시아군의 동태에 대한 정보 공유를 중단했다. 러시아는 이 ‘정보 암흑기’를 우크라이나군에 최대 충격을 가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이 ‘정보 블랙아웃’ 덕분에, 수 개월 간 지지부진했던 쿠르스크 회복 작전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고,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8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작년 8월 러시아 남서부, 우크라이나 북쪽에 위치한 러시아 쿠르스크 주로 기습 공격을 감행해 한때 서울 면적의 2배인 1300㎢의 영토를 장악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3월 초쯤에는 점령 지역의 64%를 잃었다. 이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보급 허브인 쿠르스크주 수드자에 대한 접근로를 끊는 공세를 펴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가스관을 이용한 기습 작전인 ‘포토크(Potokㆍ흐름, 流動을 뜻하는 러시아어) 작전’을 이 시기에 전개했다. 공격 루트로 사용한 지름 1.4m의 가스관은 두 달 전만해도 시베리아산(産) 가스를 유럽으로 가스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의 일부였다.
러시아 국영 매체 RT(러시아 투데이)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3주 간 가스를 빼내고 산소를 주입하고 지상으로 통하는 출구를 추가로 만들어, 탄약과 물, 병력을 이송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 수백 명의 병사가 들어가 이동하다 보니, 많은 병사들이 극심한 추위와 산소 부족에 시달리며 메탄 가스 등 유독 가스를 들이켜 심각한 화학적 폐 손상을 입었다.
러시아 특수부대 ‘아크마트’ 소속 한 군의관은 “폐가 막히거나 심각하게 부풀고 증상이 눈덩이처럼 급격히 악화돼 폐렴과 호흡 부전을 일으킨 병사들도 많았다”고 러시아 매체 프라우다에 말했다. 또 다른 러시아 군의관도 “이런 증상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포토크 작전’의 성과에 대해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측 평가가 판이하게 갈린다. 3월 8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은 가스관 안에서 600명 이상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와 기습했고, 적의 방어선을 무너뜨렸다”고 밝혔다.
러시아 매체와 소셜미디어에 소개된 크렘린 버전에 따르면, “검고 더러운 악마와 같은 모습의 러시아군이 수드자 북부의 우크라이나 방어선 뒤로 쏟아져 나오며 기습공격을 했고, 총탄이 난무하는 격전 끝에 적[우크라이나군]을 궤멸시켰다.” 러시아에선 이들은 ‘전쟁 영웅’으로 미화됐다.
그러나 같은 날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적절한 때에 공중 정찰을 통해서 가스관을 이동하는 적 병력이 감지됐다. 얼굴에 검댕이가 잔뜩 묻은 100명 가량의 러시아군은 나오자마자 80%는 우리의 포위 공격을 받아 곧 섬멸됐다”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러시아군 작전은 이미 수백 명이 가스관 안에서 질식하고 매연에 중독돼 사망하는 ‘학살’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가스관에서 나오는 러시아군 병사들을 촬영한 영상이 공개된 상황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군이 어느 정도는 이 ‘가스관 기습’을 예상했다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황을 모니터하는 우크라이나콘트롤맵(UAControlMap)은 “그러나 우크라이나군도 현장에 없어서, 드론과 포 공격에 의존했다”고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한 우크라이나군 장교는 “러시아군이 무선 교신에서 ‘죽으러 보내졌다’고 불평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만약 정보를 차단하지 않았으면, 우크라이나가 더 철저히 대비할 수 있었을까. 이 기습 공격 다음날인 3월 9일 러시아군은 수드자 북쪽 3개 마을을 탈환했고 3월 13일에는 수드자를 완전히 탈환했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국경에 가까운 쿠르스크 주의 고지대에서 러시아군과 전투하고 있다.
러시아 매체 RT는 3월 11일 “전선에서의 극적인 변화는 러시아의 극비(極秘) ‘포토크 작전’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방 분석가들은 수드자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이미 철수 중이었다고 말한다. 군사 전문가로 우크라이나 보안국의 전(前)요원이었던 이반 스투파크는 텔레그래프에 “이미 우크라이나군 상황은 어려웠고 병력은 소진됐고, 수적으로도 압도당하고 있었다. 미국의 정보 차단은 그런 원인 중 하나일뿐”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한 독립적인 언론인은 텔레그램에 “마치 성경 이야기처럼 병사들이 땅속에서 나와서 조국을 구했다는 줄거리이지만, 결국은 러시아군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신화일 뿐”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