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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일보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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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피는 1달러, 소프트 얹으면 20배"... SK, 최종현 회장 육성 실록 제작

박순찬 기자
입력 2025.04.02 10:27
1996년 1월 최종현(왼쪽) SK 선대회장이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SK

SK그룹이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 활동 일체가 담긴 13만여건의 기록을 디지털화한 이른바 ‘선경실록‘을 만들었다고 2일 밝혔다. SK라는 한 기업의 역사를 넘어 근현대 경제사를 연구하는 중요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가 그룹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문서·사진, 테이프 등 13만1647점을 복원한 결과다. SK 관계자는 “음성 녹취 테이프만 3530개로, 하루 8시간 연속해서 들어도 1년 넘게 걸리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최 선대회장이 임직원들과 가진 각종 회의,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 순간에 벌인 토론과 판단, 그룹 총수들간의 가벼운 대화 등 생생한 육성 녹음이 담겼다.
일례로 정치 상황이 불안했던 1980년대 중반, 최 선대회장은 선경 임원·부장 신년 간담회에서 “상당수 사람이 ‘최근 정치 불안이 커서 경제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한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우리는 가장 리얼리티를 걷는 기업가들이니까 불안 요소 때문에 괜히 우리(기업인)까지 들뜰 필요는 없다고. 우리가 ‘정치가 불안할수록 경제까지 망가지면 안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경제가 나빠지지 않는거야”라고 했다.
1994년 6월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 최종현(왼쪽 가운데 흰 셔츠차림) SK 선대회장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최 회장 오른쪽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SK

또 1982년 신입사원들과 대화에선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도 인재라면 외국 사람도 쓰는 마당에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지연, 학연, 파벌을 형성하면 안된다”며, 한국의 ‘관계지상주의‘를 깨자고 강조했다.
최 선대회장은 1992년 임원 간담회에선 “R&D(연구개발) 투자해서 (기술 개발) 성공했는데 돈은 안 벌린다. 그러면 R&D 예산이 깎인다”며 “R&D 직원도 시장 관리부터 마케팅까지 해봐야 비로소 이제 돈이 모이는 걸 알고 연구도 더 열심히 하고, 성공도 시킬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해 SKC 임원들과 회의에서는 “플로피디스크를 팔면 1달러지만, 그 위에 소프트를 얹으면 한 20배가 된다. 하드웨어는 20%, 80%는 소프트로 가야된다”며 하드웨어의 성장 한계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8년 1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최종현(테이블 왼쪽에서 넷째) SK 선대회장이 참석한 모습. /SK

이번 복원 자료에는 SK의 성장 과정도 담겨 있다. 세계경제 위기를 몰고 온 1970년대 1·2차 석유파동 당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최 선대회장이 중동의 고위 관계자를 만나 석유 공급에 대한 담판을 짓는 내용, 1992년 이동통신사업권을 반납할 때 좌절하는 구성원들을 격려하는 상황 등이 기록돼 있다.
이 밖에도 타 그룹 총수들과 산업 시찰에서 나눈 대화, 외국 담배회사가 한국 내 유통 협업을 제안하자 ‘돈은 틀림없이 되겠지만, 기업 문화와 맞지 않는다‘며 거절한 일화, 김장김치 보관법까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겼다.
SK는 “최 선대회장의 디지털 자료를 그룹 고유 경영 철학인 SKMS와 수펙스(SUPEX·인간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 추구 문화 확산 등을 위해 활용할 방침”이라며 “우선 내부용으로 활용하면서 외부 공개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