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5.03.15 00:40
[아무튼, 주말]
[강성곤의 뭉근한 관찰]
치킨집 부부가 답했다
청결 그리고 기름 관리
즐겨 찾는 동네 치맥집이 있다.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댄다. 날로 튼실해지는 내 뱃살의 8할은 이 집 때문. 치킨이 맛있고 생맥주가 신선하다. 김수정(55)·고천우(54) 부부가 주인. 언제나 밝은 표정에 친절한 응대가 한결같다. 두 사람이 사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치맥집은 왜 하게 되었나? “원래 인천 구월동과 서울 가락동에서 수산물 직판장 일을 했습니다. 12년쯤 하다 개인 사업으로 독립했고 서울 외곽에 창고도 따로 있을 정도로 규모를 넓혔는데 코로나 때 망했어요.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를 팔아야 했고 지금은 같은 집에서 월세 삽니다. 남은 종잣돈으로 뭘 할까 하다가 치맥집을 열게 되었네요.”
코로나 비대면 상황에서 업장을 여는 게 혹여 부담되진 않았을까. “그래서 다들 배달만 하는데 저는 좀 멀리 본 거죠. 매장 영업이 마진이 훨씬 많거든요.” 전국 치킨 브랜드는 670여 가지, 지점은 2만9000곳. 무슨 기준으로 골랐냐고 물었다. 아는 사람이 문 연 치킨집에 아이들을 앞세우고 확인차 시식을 갔는데 맛이 괜찮았다는 대답. 대형 프랜차이즈에 연연하지 않은 이유다.
안주인은 안양 출신, 바깥분은 고향이 태백. 어떻게 만났을까. 공교롭게 두 사람이 인천에 직장이 있었다. 남편이 입을 열었다. “황사 바람이 도와줬죠. 90년대 중반 인천 가정동 사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분홍색 정장을 입은 아가씨가 보였어요. 연신 머리를 쓸어 넘기고,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매만지는 거예요. 그 모습이 이뻤습니다. 작업을 걸었죠.” 뭐라고 했는데요? “거울 안 봐도 너무 이쁘신데요.”
6년 동거, 2년 반 이별, 재회 후 10년 만에 결혼했다. 두 사람은 치맥집에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다. 부창부수다. 어쩜 이토록 사이가 좋을까. “제가 사실은 성격이 급하고 화가 많아요. 다른 사람한텐 친절한 대신 모든 스트레스를 남편한테 풀어놓죠. 이이는 천성이 순하고 둔감한 편이라 그냥 다 들어줘요.” 남편은? “20대 때부터 집사람의 모든 게 좋으니까요. 다 사랑스럽죠.” 이럴 땐 뭐라 해야 하나? 참으로 못 말리는 부부다. 제일 궁금한 걸 물었다. “시내에 있는 똑같은 체인점에서 치맥 먹었는데 맛이 없던데요. 왜 그런 거죠?”
“비교하기 조심스럽지만, 청소와 청결이 비결 아닐까 싶어요” 지저분한 꼴을 못 본단다. 구체적 설명은 이렇다. 운송 업체에서 매일 새벽 3시쯤 닭⸱파우더⸱소스 등을 냉장고에 갖다 둔다. 낮에 출근해 조리법에 맞춰 닭을 조각내고, 고기를 Y자로 커팅해 이쁘게 잘라놓는다. 화요일에 20L들이 스테인리스 생맥주 통 6개가, 수요일은 식용유 6통이 온다. 맥주 통 노즐에 불순물이 안 들어가게끔 빈틈없이 씻고 닦는 게 중요하다. 맥주잔 역시 말끔히 헹궈 물기를 없앤다. 손잡이나 잔 겉면이 젖어있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이 상태로 급랭기에 넣어야 잔에 살얼음이 이쁘게 서리고 거품이 일정한 높이로 깔린다. 어판장에서 수시로 했던 세척 작업이 몸에 밴 덕분이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기름 관리다. 정제 필터를 이용해 정확히 사흘째 되는 날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튀김기에 흡착지를 하나 더 깔아서 부스러기 치킨이 안 생기게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180도 고온에 파와 생강을 함께 넣고 태워 기름에 향긋한 풍미가 돋게 하는 건 특급 노하우. 중식당 요리사 후배가 알려줬다. 부대 비용이 발생하지만 감수한다. 매출 비율은 매장이 7, 배달이 3. 딜리버리 공룡 쿠팡⸱배민이 25%를 떼어 가 남는 게 별로 없는 배달이지만 주문이 많아 포기 못 한다.
제일 기분 좋았던 때는 개업 초기,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며 “이 집 치킨은 뭔가 달라. 확실히 맛나”라는 얘기를 어깨너머로 들었을 때다. “잘되겠구나” 예감이 들었다.
“술 취해 떠들고 억지 부리는 아저씨들 없었나요? 밉상 손님은?” 5년째 영업 중인데 다행히 없었단다. 정작 속상하게 한 건 젊은 층. 어떤 청년이 혼자 와서 치킨 두 조각을 남기곤 ‘닭에서 피가 난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손님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은 대목인데 이건 핑킹(pinking) 현상으로 안심해도 된다. 닭고기 근육세포에 있는 단백질 때문에 속살이 붉은빛을 띠는 현상. 외려 신선한 닭이라는 징표다. 찬찬히 설명했는데도 어린 친구가 ‘돈을 내야 하냐’며 성질을 부리더니 다음 날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민원 신고가 접수됐다고. 위생 점검을 받았고 결과는 무혐의 처분이었다. 다른 건은 20대 여성. ‘쿠폰이 있다’며 잘나가는 메뉴를 시켰는데 손님이 왔길래 확인하니 교환권엔 다른 제품이 찍혀 있었다. 이러면 곤란하다 하니 마구 짜증을 냈다.
그래도 다 견딜 만하다. 장사가 잘되기 때문. 소망은 무얼까? 하나는 원래 집을 찾는 것. 다른 하나는 공연 기획과 실용 음악을 하는 딸 아들이 함께 만드는 무대를 보는 것. 바르고 부지런한 이 부부의 바람이 부디 이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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