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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A1면
출처
조선일보
ID
MEEGUQT2EJHUHGLJ5S5JHL44LU

한강 "2024년 계엄에 충격, 강압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길"

스톡홀름=황지윤 기자
입력 2024.12.07 00:55

스웨덴서 노벨 문학상 수상 회견

6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이야기하는 한강 작가. 그는 “문학은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의 내면으로 깊게 파고드는 행위이며, 그런 행위를 계속 반복하면서 어떤 내적인 힘이 생긴다”고 했다. /연합뉴스

“그날 밤 모두들 그러셨을 것처럼 저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된 계엄에 대해 공부했는데,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6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구시가지 감라스탄 노벨박물관 건물 3층 한림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54)이 전 세계 기자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매년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바로 그곳이다. 그가 입장하기 몇 분 전 기자회견장에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모두가 한강이 입장할 문만 쳐다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한림원에 따르면, 이날 간담회에는 세계 각국의 기자 85명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은 영어로 진행하되, 한강은 몇몇 순간을 제외하고는 한국어로 말했다. 한강 옆에는 영어 통역이 앉아 그의 한국어를 영어로 옮겼다.
그래픽=김하경

“문학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첫 질문이 나오자 그는 “잠깐 저의 생각을 먼저 정리해서 드린 다음에 질문에 답하겠다”면서 ‘계엄 정국’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차분하게 이어 갔다. 그는 “2024년 겨울의 상황이 (과거와)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되어서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던 점”이라며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의 통제를 하는 과거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한강은 45분간 한국의 상황에 대한 우려,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한 오해, 이 세계에서 살아가며 ‘희망이 있는가’ 묻는 자신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다. 검은 바지 정장에 스카프를 맨 그는 회견 내내 앞 테이블에 놓인 물은 단 한 번도 마시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은 한림원 관계자가 한국의 정치적 혼란 상황을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전 세계의 눈이 한국의 정치적 혼란 상황에 주목했다. 미스 한, 당신에게 이번 한 주는 어땠나?
“먼저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 지난 며칠 동안 한국 분들이 그랬을 텐데 충격을 많이 받았다. 상황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뉴스를 보면서 지내고 있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문학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까 짧게 말씀드렸는데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을 드린 다음에 질문에 답변하도록 하겠다. 2024년 겨울에 이 상황이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되어서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도 모습을 지켜봤는데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고 애를 쓰셨던 분들도 봤고, 그리고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도 봤고, 총을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도 봤다. 마지막에 물러갈 때는 잘 가라고 마치 아들들한테 하듯이 그렇게 소리치는 모습도 봤다.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젊은 경찰 군인의 태도도 인상 깊었다. 많은 분들이 느끼셨을 것 같은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뭔가 판단을 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의 입장에서는 소극적이었겠지만,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된다.”
한강 작가가 6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 기증한 찻잔과 메시지.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지키려고 애썼던 일과를 기록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소설 이어 쓰기’ ‘집 근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등의 내용이다. /연합뉴스

-당신은 과거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다. 미래가 걱정되지 않나?
“강압적으로 눌러서 막으려고 한다고 해서 그게 잘되지 않는 그런 속성이 언어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있다 해도 계속해서 말해지는 어떤 진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언어의 힘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채식주의자’가 유해 도서로 선정되고, 도서관에서 책이 폐기됐다.
“먼저 ‘채식주의자’는 스페인에서 고등학생들이 주는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낭독회를 할 때, 고등학생들이 ‘채식주의자’에 사인해달라고 하면 ‘이건 나중에 읽고, ‘소년이 온다’ 먼저 읽어’ 이야기했다.”
이어 한강은 “‘채식주의자’가 받고 있는 오해에 대해서 지루하실 수 있겠지만, 허락해주신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을 이었다.
“채식주의자는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제목 ‘채식주의자’는 주인공을 지칭하는 것인데, 주인공은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명명한 적이 없다. 제목부터 아이러니가 들어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주인공이 말을 하는 부분은 없다. 주인공은 철저히 대상화돼서 그려진다. 오해받고, 혐오받고, 욕망 되고…. 완벽한 객체로 다뤄진다. 그래서 이 구조 자체가 책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문학적 장치가 있다. 첫 장의 화자가 가장 신뢰할 수 없고, 두 번째는 일정 부분 덜하고, 마지막도 영혜(’채식주의자’ 주인공 이름)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오해받는 것이) 이 책의 운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긴 하지만 이 소설에 유해 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하고 이러는 것이 책을 쓴 사람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누가 더 이상하지? 이 여자를 둘러싼 세계가 더 이상한 거 아닌가, 물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정상이고 광기인가 질문하고 싶었다. 이 책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신체가 우리 최후의 피신처일 수 있는가? 두 자매의 비명일 수도 있다. 여러 레이어(겹)가 있다.”
6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 박물관에서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수상자만을 위한 특별한 방명록인 박물관 레스토랑 의자에 서명을 남긴 뒤 의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2022·프랑스), 욘 포세(2023·노르웨이)의 서명이 보인다. /연합뉴스

-노벨문학상 수상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상은 문학에 주는 상이다. 처음엔 나에게 쏟아지는 개인적인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문학에 주는 상이고 제가 이번에 받았구나,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계속 쓰려고 한다. 부담 없이. 아임 레디 투 라이트 어게인 나우(I’m ready to write again now, 다시 쓸 준비가 됐다). (스톡홀름에 와서) 할 게 너무 많다.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이다(웃음).”
-노벨박물관에 찻잔을 기증한 이유는?
“나에게 친밀한 사물이어서다. 단순하고 조용하게 한마디 건네는 느낌이 좋아서 한 거다. 지금은 카페인을 끊었다. 하루에 몇 번씩 책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그 잔만큼만 홍차를 마셨다. 그 찻잔이 계속해서 나를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제가 올해가 작가로서 활동한 지 31년이 되는 겨울이다. 사실 (박물관에 전시된) 메모에 쓴 것처럼 항상 루틴을 지키면서 살았다고 하면 큰 거짓말이다. 무슨 소설을 쓰지 고민하고, 덮어 놓고, 걷고 이런 시간이 많았다.”
-당신의 고향 광주는 어떤 의미인가?
“저는 1970년 11월 광주에서 태어나서 1980년 1월에 서울에 올라왔다. 9년 2개월을 살았다. 나머지 40여 년은 서울에서 지냈다. 나는 광주 사람이기도, 서울 사람이기도 하고, 한국 사람이기도 하고, 세계 시민이기도 하다(웃음). 저를 그렇게 딱 어떤 존재로 규정하기는 어려운데. 고향이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소년이 온다’를 쓰는 과정이 나를 많이 변화시켰고, 나의 중요한 책이기 때문에 광주는 특히 의미가 있다.”
-노벨상 발표 이후 축하받는 것에 머뭇거렸다. 세계적인 갈등 상황 때문이었나? 지금은 기분이 어떤가?
“처음에 뭔가 오해가 있었다. 제가 축하를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고, 조용하게 축하를 했다. 가족들이 너무 크게 잔치를 한다고 해서, 안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게 과장이 돼서 축하 자체를 안 하고 싶다는 식으로…. 그런데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시기이다. 때로는 ‘희망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요즘, 얼마 전부터, 몇 달 전부터, 아니면 그전부터일지도 모르겠는데,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통역사가 한강의 마지막 말을 “I asked myself, hey, hoping for hope is a hope(스스로에게 물었다. 야, 희망을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야)”라고 다소 경쾌하게 통역하자 작가가 슬며시 웃으며 통역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It sounds very optimistic(너무 긍정적으로 들린다).” 고요하던 기자회견장에서 가장 큰 웃음이 터지면서 회견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