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쿵쿵, 새벽잠 깨운 산사태… 모든게 파묻혔다

입력 2020.08.03 03:00

[중부지방 강타한 물폭탄] "70평생 비때문에 산사태는 처음"

"시뻘건 흙물이 쏟아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나무와 경운기까지 휩쓸고 내려갔어요."

2일 낮 12시 충북 충주시 엄정면 율능리 마을 주민들은 집을 삼켜버린 흙더미를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엄정면에는 밤사이 339㎜의 폭우가 쏟아졌다. 한때 시간당 58.5㎜가 퍼부었다. 주민 이모(69)씨는 "7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비 때문에 산사태까지 나는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마을에 산사태가 덮친 것은 이날 오전 7시쯤이었다. 민가를 둘러싼 언덕에서 갑자기 흙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일부 주택 벽이 쩍 하며 갈라졌다. 골목길에 세워둔 경운기는 흙더미와 함께 10m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엄정면 가춘리 주민들은 잠을 자다 산사태를 맞았다. 주민 김모(66)씨는 "새벽 4시쯤 우르르 쿵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집 뒤에서 흙과 돌덩이가 쓸려 내려왔다"면서 "부랴부랴 뛰쳐나오는 사이 뒷마당에서 기르던 개와 승용차까지 흙더미에 파묻혔다"고 말했다.

물에 잠긴 굴착기 - 2일 오후 쏟아진 폭우로 물에 잠긴 경기 용인시 근곡사거리 인근 도로에 굴착기가 고개를 박고 고꾸라져있다 .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자정부터 오후 5시까지 이 지역에는 160㎜의 비가 내렸다. 이날 수도권 전역에는 호우 특보가 내려졌다.
물에 잠긴 굴착기 - 2일 오후 쏟아진 폭우로 물에 잠긴 경기 용인시 근곡사거리 인근 도로에 굴착기가 고개를 박고 고꾸라져있다 .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자정부터 오후 5시까지 이 지역에는 160㎜의 비가 내렸다. 이날 수도권 전역에는 호우 특보가 내려졌다. /장련성 기자

지난 1일 밤부터 2일까지 충북 북부와 강원 등 중부 지역에 시간당 50㎜ 이상 물폭탄이 쏟아졌다. 특히 충북 북부에 피해가 집중돼 급류에 휩쓸리거나 산사태로 매몰되는 사고로 4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충주시 엄정면을 지나는 원곡천과 영덕천은 순식간에 물이 불어났다. 원곡천이 범람하면서 천변 80가구 주민 120여 명은 이날 오전 5시 20분부터 시장마을회관과 엄정면주민센터로 급히 대피했다. 대피한 한 주민은 "평소엔 잠잠하던 하천이 흙탕물로 변해 폭포수처럼 흘러가는데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7시 30분쯤 충북 충주시 산척면에선 충주소방서 소속 20대 구급대원이 폭우로 유실된 도로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실종된 충주소방서 소속 송모(29) 소방사는 사고 당시 산척면 주택 가스 폭발 현장에 동료 4명과 함께 출동하던 중이었다. 산척면 영덕리 주민 안모(53)씨는 "동료 소방관이 차에서 급히 내려 달려가며 떠내려간 대원 이름을 애타게 불렀지만, 순식간에 벌어져 손쓸 틈도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집중호우로 충북선과 태백선 철도의 전 구간 운행도 중단됐다. 코레일 충북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30분쯤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중앙선 선로도 일부 유실되고, 인근 하천 범람 등이 우려돼 양방향 철도 운행이 중단됐다.

경기 안성에서도 산사태로 주민 1명이 숨졌다. 안성 일부 지역은 이날 오전 7시를 전후해 시간당 100㎜를 넘는 강수량을 기록했다. 2일 오전 7시 10분쯤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 양계장에서 산사태로 토사가 밀려들어 최모(58)씨가 숨졌다. 최씨는 집 밖으로 탈출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는 특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피해가 심했다. 이천시 율면 산양저수지와 안성시 일죽면 주천저수지는 둑이 일부 붕괴했다. 안성과 이천 등 26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중부고속도로 일죽IC 부근에는 2일 오전 토사가 밀려들면서 일죽IC~대소IC 구간의 양방향 통행이 한때 통제됐다. 경기도는 3일까지 100∼200㎜의 비가 더 내릴 수 있다는 예보가 나오자 재난대책본부 근무 체계를 9년 만에 최고 수준인 비상 4단계로 격상했다. 수도권 집중 호우로 팔당댐 방류량이 늘면서 한강 수위가 높아져 2일 오후 5시 27분부터 서울 잠수교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제4호 태풍 하구핏으로부터 수증기가 공급되고 북서쪽에서 유입되는 건조한 공기와 부딪치면서 강한 비구름대가 계속 발달하고 있다. 하구핏은 지난 1일 오후 9시 일본 오키나와 남쪽 590㎞ 부근 해상에서 발생했다. 하구핏이란 이름은 필리핀에서 낸 이름으로 '채찍질'이란 뜻이다. 하구핏은 2일 오후 3시 기준 대만 남동쪽 약 380㎞ 해상에서 시속 17㎞ 속도로 북서진하고 있다. 최대 풍속은 초속 19m 수준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하구핏은 4일 새벽 중국 남동해안에 상륙해 열대저압부로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오는 12일까지도 많은 비가 올 수 있다고 기상청은 내다보고 있다. 기상청은 "하구핏이 열대저압부로 약화하는 과정에서 수증기량이 늘어나면 5일 이후 비의 강도가 더 강해지고 강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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