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보람이 사람을 살게 한다

입력 2020.08.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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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호텔의 모든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영업 상황과 주방을 점검한다. 지난주부터 전운(戰雲)이 호텔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 '호캉스'가 시작됐기 때문. 호캉스 고객은 서비스를 즐기려는 것이기 때문에 아침 식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아니나 다를까 뷔페식당 앞이 장사진이다. 에그 스테이션에 난리가 났을 것이 분명했다.

몸을 날리듯 조리대 앞으로 뛰어갔다. 오믈렛 4개, 화이트 에그 오믈렛 1개, 에그 베네딕트 3개…. 계란 프라이도 익히는 방법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오버 이지 2개, 서니 사이드 업 1개, 프라이 웰던 2개…. 주문이 장마철 폭우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유재덕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조리팀장
유재덕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조리팀장

에그 스테이션의 메인 요리사는 숙련된 고참이었지만, 보조 요리사가 경험이 적은 신참이었다.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반쯤 혼이 나가 있었다. 나는 이 전투 편대 안으로 잽싸게 들어섰다. 프라이팬을 추가하고 달걀을 직접 깨 볼에 담았다. 수란을 위해 냄비 물을 붓고 불의 세기를 맞춘다. 이 과정에 말은 필요 없다. 신참에겐 '걱정 말고 요리에 집중하라'고 눈으로 말해주었다.

곧 고객의 대기 줄이 줄어들었고 우리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때다. 한 고객이 '맛있어요'라며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만 보였지만, 그분은 미소 가득한 시선으로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 즐거워졌다. 고객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나는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를 평생 요리사로서 살도록 만든 힘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고객의 미소, 칭찬, 감사…. 비록 찰나의 소통일 뿐이지만 그 보람이 나를 계속 요리사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믿는다. 보람이 사람을 살게 한다는 이 작은 깨달음을 후배 요리사들에게도 꼭 전해주고 싶다.

※ 8월 '일사일언'은 유재덕 셰프를 비롯해 허명현 음악평론가, 이혜숙 작가,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이지유 과학저술가가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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