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재건축·재개발 6년간 393곳 취소… 새 집 25만채 걷어찼다

입력 2020.08.03 01:40 | 수정 2020.08.03 08:58

[부동산시장 대혼란] 세입자·문화재 보호 명목으로 무산된 지역, 절반이 빈집

지난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터널 앞 6차선 대로에서 벗어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5분 정도 오르니 이곳이 서울 한복판인지 의심되는 풍경이 펼쳐졌다. 기와지붕이 무너져 서까래가 드러나고 잡초가 우거진 빈집들과, '낙하물 주의' '출입 금지' 같은 안내문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주민 최은숙(57)씨는 "엊그제 뭔가 무너지는 소리에 나와 보니 앞집 지붕이 주저앉았더라"며 "장마에 집 뒤 담벼락까지 무너질까봐 이틀째 잠을 설치며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이 일대는 '사직2구역' 재개발 지구로 2012년 9월 사업시행 인가를 받고 14동(棟) 456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7년 3월 서울시가 직권으로 재개발 지구 지정을 취소했고, 3년 넘게 방치되면서 슬럼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25만 가구 공급 기회 날려

부동산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서울 집값 급등의 원인 중 하나로 정부와 서울시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민간 주도의 정상적인 주택 공급을 막은 것을 지적한다. 주택 공급은 정부뿐 아니라 재건축·재개발 조합 등 민간 사업자가 담당하는 몫도 적지 않은데, 서울에 양질의 주택이 대량 공급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는 것이다.

아파트 추진되던 곳, 지금은 이렇게… - 서울 종로구 사직2구역의 모습. 당초 이 지역은 재개발을 통해 456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뀔 예정이었지만 2017년 서울시가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직권해제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개발 중단 후 방치되면서 지금 이 지역은 빈집이 넘쳐나고 장맛비에 지붕이 무너져내릴 정도로 주거 환경이 악화됐다.
아파트 추진되던 곳, 지금은 이렇게… - 서울 종로구 사직2구역의 모습. 당초 이 지역은 재개발을 통해 456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뀔 예정이었지만 2017년 서울시가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직권해제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개발 중단 후 방치되면서 지금 이 지역은 빈집이 넘쳐나고 장맛비에 지붕이 무너져내릴 정도로 주거 환경이 악화됐다. /오종찬 기자
대표적인 게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주도로 사직2구역 같은 정비사업 지구 지정을 무분별하게 해제한 정책이다. 서울시는 사업이 지지부진하거나 세입자와 영세 조합원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택 공급 등 순기능을 따져 정비사업을 마무리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작년 11월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서울 정비사업 출구전략의 한계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사직2구역처럼 재개발·재건축이 추진되다가 취소된 지역이 총 393곳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박원순 시장 취임 직후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정비사업 지구 지정이 무더기로 취소되면서 착공하지 못한 아파트가 총 24만8889가구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정비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됐을 경우 위례신도시(4만4877가구) 5개를 건설하는 정도의 새집 공급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도시재생 한다더니 바뀐 게 없다"

정비구역 해제로 사라진 서울의 주택공급 기회 그래프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은 없다"며 5년간 50조원을 들여 낡은 도심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펼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재개발·재건축이 무산된 지역 주민들은 "아파트도 못 짓게 하고, 도시재생 한다더니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서울 종로구 옥인1구역도 애초 450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2017년 재개발 지구 지정에서 취소돼 지금은 약 200가구 중 절반이 빈집으로 남아 있다. 옥인동에서 40년을 살았다는 60대 주민은 "도시재생 사업으로 보도블록 깔고, 도시가스 끌어들인 게 전부"라며 "도시가스도 500만원을 개인 부담하라 해서 난 포기했다"고 말했다.

재개발·재건축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이웃 동네를 보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사직2구역 주민 장모(71)씨는 "우리 바로 옆 사직1구역은 10년 전 재개발이 끝나 번듯한 아파트가 됐는데 부럽기만 하다"고 했다. 사직1구역은 657가구의 주상복합 '풍림스페이스본'으로 재개발됐고, 인근 돈의문1구역은 30동 2415가구의 '경희궁 자이'로 변신해 2017년 입주했다.

기부채납 재건축에 파격 용적률 검

"서울에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고 줄곧 고집을 부려온 정부는 이르면 4일 서울을 중심으로 한 추가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재건축 단지로부터 기부채납을 받고 용적률을 대폭 늘려 새로 짓는 주택 수를 2.5~3배까지 늘릴 방침으로 알려졌다. 용적률 인센티브의 원활한 적용을 위해 서울시는 '35층 층고 제한'을 깨는 것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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