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256] 닭발 서기로 도를 닦다

조선일보
입력 2020.08.03 03:16

조용헌
조용헌

채담가(採談家)에게 있어서 두꺼운 역사는 풍부한 단백질과 같이 느껴진다. 역사야말로 이야기꾼의 밑천인 것이다. 지리산 계곡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하동 칠불사(七佛寺).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니까 거의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해발 700m의 터에다 커다란 소가 감싸고 있는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이다. 날카롭지 않고 무난한 듯하면서도 은근히 밑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강한 터이다. 신선들은 이런 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칠불사 뒤에서 토끼봉 사이의 능선 구간에 신선들 이야기가 많다. 이 구간에 4차원의 또 다른 공간이 있다고 도사들 사이에서 전해진다. 바로 금강굴(金剛窟)이다. 이 굴은 영안(靈眼)이 열린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끔가다 보인다고 한다. 수백 살 먹은 신선이기도 한 지리산의 개운조사(開雲祖師)가 바로 이 금강굴에서 자주 거처한다고 해서 개운조사 추종자들은 이 금강굴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 향수와 염원이 있다. 1980년대에 개운조사의 존재를 신봉했던 이 근방 군부대의 대대장이 장병들 수백 명을 풀어서 이 금강굴을 찾겠다고 대대적인 수색을 한 적도 있다. 엊그제 칠불사에 들러보니까 조선 중기 추월조능(秋月祖能) 대사의 고행했던 이야기가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닭이 서 있는 것처럼 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만 서서 다니는 수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걸 계족정진(鷄足精進)이라고 한다. 칠불사 내의 특수온돌 선방인 아자방(亞字房)에서 머무를 때는 항상 뒤꿈치를 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매일 20리 넘게 떨어진 쌍계사에 가서 참배하였다. 쌍계사 탑전에는 육조혜능 대사의 두개골인 육조정상(六祖頂相)이 모셔져 있었기 때문이다. 쌍계사까지 왕복 50리 길을 갈 때는 등 뒤에다가 10㎏ 정도의 돌을 메고 다녔다. 때로는 호랑이가 나타나 조능대사의 등에 멘 돌을 받쳐주기도 했다고 한다. 고행이 계속되니까 어느 날 조능대사의 종아리에서 피가 터졌다. 그 피가 흥건하게 아자방 바닥에 스며들었다. 후학들은 그 피 묻은 바닥을 떼어다가 아자방 다락에 보관하였다. 게으른 마음이 들면 그 피 묻은 장판을 쳐다보는 관습이 있었다. 조능대사는 죽을 때 앉아서 죽었고, 앉은 채로 죽은 시신을 항아리에 담아 그대로 묻었다. 지금 부도전 위쪽의 왼쪽에 있는, 이끼가 낀 두꺼운 넓적바위는 그 시신 항아리를 덮어놓은 뚜껑이다. 부도전에서 바라보니까 지리산 영봉들이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