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홍콩 사태에 침묵하는 민주화 선배 한국

조선일보
  •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입력 2020.08.03 03:22

우리의 6월항쟁은 2년 뒤 천안문 민주화 시위에 영향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31년 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는 민주화와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플래카드를 든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은 자유 만세, 민주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저항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마오쩌둥 사상에 반하여 인민해방군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한다.

30년이 지난 현재 비밀 해제된 각국 문서를 통해 톈안먼 사태의 진상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현지 영국 대사가 보고한 외교 전문은 1만여명이 피살된 것으로 평가했고, 미 정부 문서에는 중국 내부 문건을 인용하여 1만545명이 피살되었다고 한다. 구소련 공산당 정치국 보고는 3000명으로 추산한다. 스케일이 다른 진압 과정의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 외교 문건에 의하면, 톈안먼 사태 진압 직후 덩샤오핑은 '200명의 죽음이 중국에 20년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예언대로 20년간 중국은 승승장구였다. 20년이 지나 세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던 고도 경제성장이 멈추었고 중국 곳곳에서 시위가 분출했다. 정치학 교과서에 따르면, 국민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국민의 정치 참여 요구가 급격히 증가한다. 순조롭던 성장도 정체된다. 바로 우리도 겪었던 중진국의 함정이다. 역사상 많은 국가가 그 문턱에 도달했지만, 이를 통과하여 선진국이 된 나라는 많지 않다. 성공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정치 자유화와 민주화였다. 민주화 없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마오쩌둥 독재 폐해를 절감한 덩샤오핑은 권력을 분산하는 집단 지도 체제를 도입하고 임기 제한을 두는 등 제한적인 정치 민주화를 추진했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2012년 등장한 시진핑 주석은 종신 집권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했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했다. 마치 박정희 대통령이 중진국 함정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유신 독재를 열었던 상황을 연상하게 한다. 수억 대의 CCTV, 얼굴 인식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인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할 수 있는 디지털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해외 정보 유입을 막기 위한 인터넷 감시망도 갖추었다. 디지털 감시 체계의 위력은 코로나 대처에서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편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는 하향식 혁신을 적극 추진한다. '중국제조 2025'를 통해 2025년까지 AI, 신소재, 반도체 등 첨단 분야를 일거에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경쟁력 없는 중국 기업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주고 외국 기업에는 반시장 장벽을 구축하며 합법·불법을 총동원하여 해외 기술을 습득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국제 사회와의 마찰이 심각화하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 전제주의로 민주화 없이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톈안먼 사태 30주년 시점에 홍콩에서 700만 시민 중 150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발발했다. 중국 공산당에는 큰 충격이었다. 덩샤오핑은 1997년 홍콩 반환 시 최소한 50년간 홍콩 제도를 존중하며 법률도 변하지 않고 간부도 파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기본법에 명문화했다. 그러나 중국은 얼마 전 홍콩 자치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였고 이를 전담하는 정보기관을 홍콩에 설치했다. 이 법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를 국가 분열과 테러라는 죄목으로 체포, 종신형까지 처벌할 수 있다. 당장 국가보안법에 따라, 홍콩에서 체포가 이루어지고 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당장 시진핑 주석을 '파탄된 전체주의 이념의 신봉자'로 직격탄을 날렸다. 시진핑 주석은 국내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권력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 경험을 본다면, 이미 중국은 과감하게 민주화의 빗장을 풀더라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톈안먼 사태 이후 평생 가택 연금되었던 자오쯔양 당총서기는 죽기 전 '국가의 근대화를 원한다면 시장경제와 함께 의회제 민주주의를 채용해야 한다'는 육성을 남겼다.

우리의 6월항쟁은 2년 뒤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촉발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홍콩 시위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그런데 정작 광장민주주의를 자랑하던 우리는 중국과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에 침묵한다. 홍콩 국가보안법과 관련, 한국 외교부는 홍콩의 '고도의 자치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뜬금없이 '미·중 양국이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지지한다'고 했다. 작금의 홍콩 사태가 미·중 갈등 탓으로 들린다. 미·중 사이의 선택이 아닌 대한민국의 근본적 정체성이 무엇인지의 문제라는 점을 잊고 있다. 우리가 이룩한 민주화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초라하게 느껴진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