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꾼 '불멸의 암세포', 70여 년만에 보상받아

입력 2020.08.02 16:39 | 수정 2020.08.02 17:02

1951년 무단 채취된 '헤라세포', 세포 연구에 큰 공헌
과학계, 그간 큰 이익 얻었음에도 가족에게 보상 안 해
기업과 연구소에서 기부를 통해 처음 혜택 돌려줘

헨리에타 랙스(왼쪽)의 생전 모습/존스홉킨스병원 홈페이지
헨리에타 랙스(왼쪽)의 생전 모습/존스홉킨스병원 홈페이지
세상을 바꾼 ‘불멸의 암세포’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70여년만에 이뤄지게 됐다.

1951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는 극심한 아랫배 통증을 느끼고 치료를 위해 존스홉킨스 병원을 찾았다. 그는 자궁 경부암을 진단받고, 8개월만에 사망했다.

랙스는 사망했지만, 그의 종양 샘플에서 채취된 암세포는 한 연구원의 실험실로 보내졌다. 당시 연구실에선 인간 세포를 배양하려는 실험이 이어졌다. 배양된 세포는 같은 모양으로 계속 분열하는데, 수많은 똑같은 세포를 실험에 이용하면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해 연구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인간 세포 배양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중 랙스의 세포만은 계속 살아남아 분열했다. 랙스의 세포는 암 세포였기 때문에 다른 세포들과 달리 쉽게 죽지 않았던 것이다. 랙스의 암 세포는 ‘최초로 배양에 성공한 인간세포’로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공유됐으며, ‘헨리에타 랙스’에서 이름을 따와 ‘헤라(HeLa) 세포’라고 불리게됐다.

헤라세포는 이후 수많은 연구에 이용됐다. 암, 독감, 파킨스병을 치료하는 약과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사용됐으며, 에이즈의 원인도 헤라세포를 통해 밝혀졌다. 자궁경부암 원인이 연구되는 등 암 연구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방사선 노출에 세포가 미치는 영향을 테스트하기 위해 우주선에 실려 외계로 나가기도 했다. 헤라 세포가 랙스는 사망에 이르게했지만,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약회사와 연구소 등은 큰 이익을 얻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헤라세포를 최소 400달러(약 47만원)에 구매한다.

하지만 랙스의 가족들은 아무런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랙스의 세포가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20년간 몰랐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처음 헤라세포를 사용할 때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0여년이 흘러 마침내 랙스의 가족들이 헤라세포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받게 됐다고 1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브캄 PLC는 ‘헨리에타 랙스 재단’에 후원을 통해 랙스 후손들에게 과학, 기술, 수학 분야의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CEO인 앨런 허젤은 “우리 회사의 셀라인 관련 제품 중 60~65%가 헤라 셀라인에 기반해있다”며 “의무는 아니지만 다른 기업들도 기부를 고려하길 바란다”고 했다.

캘리포니아대 사마라 패터슨 교수의 연구소에서도 과거 연구원들이 헤라세포를 변형해 만든 네 개의 셀라인에 대해 각각 100달러를 재단에 내겠다고 했다. 패터슨 교수는 “작은 일이지만 다른 연구소도 비슷한 일을 하도록 장려하고 싶다”며 “만약 세포를 사용하는 모든 연구소가 돈을 기부한다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블레어 캘리 헨리에타 랙스 재단 이사는 두 기관의 기부에 대해 “헤라세포로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회사와 연구소가 무엇이 옳은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 많은 기관이 헤라세포를 통해 얻은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저자인 레베카 스클루트는 “헤라세포로 과학계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얼마나 많은 제품을 만들었는지는 계산 불가능이다”라며 “헤라세포에 의존하는 기관들은 랙스 가족을 위해 기부하라”고 말했다. 랙스의 손녀인 제리 랙스는 “‘누군가의 세포에 빚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기부는 헤라세포가 만들어낸 공헌을 인정하는 첫걸음”이라고 FT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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